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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Nov 01. 2022

다시, 지리산

“샘, 지리산 세석평전 같이 올라가지 않으실래요?”

문득 벗이 물었다.


언제였던가.

회사원일 때 슬그머니 내 자리로 다가와 건네던 한 후배의 목소리가 오버랩되었다.


“선배, 우리 데리고 지리산 가주시면 안 돼요?”


한 때 자타공인 산 마니아이던 적이 있었다. 주말마다, 휴가마다 산을 다녔다. 멀리 가까이.

키나발루 산도 그때 올랐고, 네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간 것도 그때였다. 심지어 트레킹하고 새벽에 공항에 도착해서 바로 출근하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한 체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지리산을 자주 올랐던 것은 아니었는데 후배들은 왜였는지 모르지만 느닷없이 지리산을 가고 싶다고 했고, 그들을 안내할 보호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리산행을 부탁한 후배 포함 다섯 명, 나까지 여섯 명은 그렇게 지리산행에 나섰다. 백무동탐방센터에서 세석으로, 장터목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천왕봉을 오르는 산행이었다. 등산 초보들을 데리고 가기엔 좀 무리한 긴 산행이었지만 젊지 않은가. 다들 등산복으로 출근해 동네방네 산에 간다고 티를 내었고 국장님 허락까지 받아 금요일 퇴근 시간보다 조금 일찍 업무 종료. 공식 회사 행사도 아닌데 여기저기 찬조금도 걷었다. 

왜 힘이 들지 않았을까. 결국 천왕봉 일출산행은 두 명이 포기를 했고, 누군가는 내려오는 길에 진통제 처방까지 해야 하기도 했다. 그래도 산에서 내려왔을 때 누구도 ‘다시는 지리산에 오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리산을 올라 보면 안다. 왜 자꾸만 지리산에 가고 싶어 지는지.


“세석평전에 다시 가보고 싶은데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요.”


벗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를 따라 한창 산에 맛을 들리던 해에 처음으로 간 지리산은 그녀에게 ‘다시’의 주문을 걸었다. 다른 산은 별로 기억에 안 남는데 지리산은 왠지 꼭 다시 한번 가고 싶었다고 했다. 나 역시 벌써 몇 해째 ‘지리산에 가야지 가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그러자’고 했다. 긴 산행을 해본지가 워낙 오래되어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막상 가자고 맘먹으니 설렘 같은 것이 있었다.

대피소에서 자는 것까지는 아직 번거로워 새벽 산행을 하기로 했다. 세석평전만 가려니 세석에서 장터목 가는 길이 밟혀서 두 시간 정도를 더 걷기로 했다. 심야버스를 타러 밤늦게 배낭을 메고 나서는 길. 이런 여행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터미널, 심야버스. 한때 익숙하던, 삶의 한 부분이던 것이 오랫동안 멀리 있었다. 


“우등 버스가 이렇게 좋았었나?”


3시 반. 백무동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에 내려서 하는 행동도 다 같았다. 등산화를 다시 챙겨 신고, 등산스틱 길이를 맞추고, 헤드랜턴 불을 테스트하고. 간단히 먹을거리를 꺼내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산으로 향했다. 

컴컴한 밤 산길에 헤드랜턴 불빛만큼의 반경을 보며 계곡의 세찬 물소리로 공간을 가늠하며 걷는 길에는 오롯이 걷는 행위가 담겼다. 새벽 산행, 어둠 속의 산행은 밝은 날의 산행보다 오히려 덜 힘들기도 하다. 미리 오르막을 보며 한숨 쉬지 않고, ‘저만큼만 가면....’ 같은 앞선 희망도 없기에 그렇다. 날이 서서히 밝기 시작하면 풍요로운 주변의 풍경에 감탄하면서도 주변은 산만해진다. 더 좋은 풍경과 길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급해지기에 내 호흡을 잃는 경우도 많다. 조급한 맘을 달래며, 지금의 걸음에 집중하며, 무엇보다 나의 속도를 잘 가늠하며 오르는 일. 그것이 내가 가진 등산의 요령이라면 요령이다. 


“오르막이던 내리막이던, 편한 길이던 어려운 길이던, 힘이 있던 없던 항상 같은 호흡과 속도로 가면 덜 힘들어”


네팔 트레킹을 할 때 가이드였던 친구가 힘이 남는다고 급히 가려던 나를 세우며 했던 말이다. 그 친구 덕에 그 이후 나의 산행은 조금 느려졌지만 많이 수월해졌다.


거의 12시간의 산행. 내려오는 길에 벗이 많이 힘들어했지만 둘 다 무사히 다시 지리산을 만나고 내려왔다. 

“이제 다시는 지리산에 올 생각은 안 할 거예요”

힘든 하산길에 주문처럼 이 말을 내뱉던 벗은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싱겁게 이내 ‘다시 지리산’을 말했다. 


생각해보면 ‘지리산 종주’는 대학시절부터 어떤 처방전 같은 것이었다. 삶이 좀 어수선해지고, 뭔가 명징성이 떨어질 때, 명확한 목표와 장소에 기대어 그 명징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마음은 ‘지리산에 가야겠다’는 주문으로 이어졌다. 그 주문이 항상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왠지 그런 주문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것만’하면 지금의 이 어수선함은, 불명확함은 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안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지리산’ 처방을 한 나의 시야는 조금 더 명확해졌는가.

내려오자마자 ‘다시, 지리산’에 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그럴 리가 없다.

괜찮다.

꿈뻑꿈뻑 흐린 시야를 회복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여전히 그곳에 닿아있으니. 예전에 비해 준비해야 하는 장비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아직 건강히, 거뜬히 그곳을 오르고 내려올 수 있으니. 그렇게 나의 주문이 여전히 유효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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