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언어-스페인어로 살다 #7
“플라멩코를 배우는 건 어때?”
스페인에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지인들이 내게 한 말이다. 하지만 춤과는 그다지 친하지 않은 나였기에, 스페인의 대표 키워드인 ‘플라멩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스페인에 도착하고 한 달 뒤 세비야에서는 플라멩코 비엔날레가 열렸다. 현지에서 하는 이런 축제쯤은 즐겨줘야지 하는 관광객 마음으로 소개 팸플릿을 두리번거리다가 ‘개막공연이 그래도 가장 좋지 않을까?’하며 표를 알아봤지만 이미 매진이었다. 당일 날 혹시나 하며 개막공연이 있는 투우 경기장에 가 보았는데 놀랍게도 암표를 팔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국에서 한 번도 암표 같은 걸 사본적인 없었지만 외국이라 용감해진 것일까. 본래 20유로인 표를 두 배를 주고 샀다. 그래도 한국 공연비에 비하면 너무 훌륭하다고 스스로 으쓱해하면서 말이다.
당연히 춤 공연이라고 생각했는데 공연자는 댄서가 아닌 '미겔 포베다'라는 유명한 플라멩코 가수라는 것을 공연이 시작되고서야 알았다. 플라멩코가 춤이 아니라 노래, 기타, 춤, 박수 등으로 어우러진 하나의 장르 임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의 내 생애 첫 플라멩코 공연은 완벽하게 나를 매료시켰다.
그날 이후 나는 ‘Me gusta el flamenco 메 구스따 엘 플라멩코 (나는 플라멩코를 좋아해요)’라는 문장을 입에 달고 다녔다. 거의 매일 밤 골목의 크고 작은 공간에서 하는 플라멩코 공연들을 찾아다녔고 그 덕에 플라멩코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게 되기도 했다.
춤은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플라멩코 가창 수업을 듣기도 했는데 시작할 때만 해도 한국에 돌아가면 지인들과 환영파티를 하며 플라멩코 공연을 하겠다는 어이없는 꿈을 꾸며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심각한 박치인 나에게 가뜩이나 박자가 어려운 플라멩코가 쉬웠을 리 없었다. 빠르게 환영파티 무대의 꿈은 접었지만 가사 속에서 이들의 정서를 만나고 플라멩코를 조금 더 알아간다는 것이 마냥 좋아 한참을 배웠다.
그렇게 플라멩코와 함께 한 스페인 살이가 어느 정도 쌓였을 때 현지 친구들은 ‘플라멩코’하면 나를 생각할 정도였다. 좋은 공연이 있으면 추천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 나에게 반대로 정보를 묻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좋은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스페인에서 나는 소문난 플라멩코 덕후였다.
한국에서는 ‘뭘 좋아해?’라는 질문에 답 찾기는 많은 무엇 중에 골라내야 하는 어려움과 막연함이었다면 오히려 스페인 살이에서는 “me gusta [ ] ([ ]가 좋아요)’라는 문장 빈칸에 하나하나 무언가 단어를 채워가는 일이라 더 명확하곤 했다. 그 하나를 '플라멩코' 가 채웠고 그건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비어있는 것을 채우는 무엇이 진짜라는 것을 그 시간 동안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스페인어에서 'gustar구스따르(좋아하다)‘ 동사는 조금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동사가 좋아하는 주체가 아닌 대상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대상이 '너'나 '당신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3인칭이라 "Me gusta메 구스따 + 좋아하는 것" 이렇게 외워 쓰면 편하다. "me gusta 커피, me gusta 영화, me gusta 여행..." 이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