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번째 언어-스페인어로 살다 #6
츄파츕스가 스페인에서 나오는 사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적어도 나는 사탕 메이커가 어느 나라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그걸 알게 된 것은 스페인에 살면서였다. ‘Chupar추빠르’라는 ‘빨다’라는 동사에서 만들어진 이름인 이 사탕 브랜드는 1969년에 막대사탕의 대명사가 된 상표로 아이들이 발음하기 좋도록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사탕을 그렇게 즐기지 않는 나에게 츄파춥스가 특별해진 것은 스페인 살이 1년 차에 세비야 예술학교 실기시험을 보러 갔을 때였다. 취미로 타일 공예를 배우러 다니던 곳에서 선생님이 추천을 해주어 지원하게 된 예술학교를 입학하려면 실기시험을 쳐야 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대학입시 같은 종류의 시험은 아니고 간단한 기능 테스트 같은 것이었는데 미술 전공을 한 번도 해 보지 않는 내가 아무 준비도 없이 실기시험을 보러 간다는 것이 다소 어이없는 일이라 긴장보다는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있었다. 시험을 보러 온 다른 학생들은 다들 거창한 미술도구가방들을 들고 있었는데 나는 달랑 시험 안내 준비물에 적혀 있던 색연필 몇 개와 연필 지우개가 전부였다.
다소 불편한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온 시험관은 모두에게 츄파춥스 사탕을 나누어주었다.
‘여긴 시험 보기 전에 사탕도 주는구나’
편안하게 시험을 보라는 간식쯤으로 사탕을 생각한 나는 신기하기도 재미있기도 하다며 받자마자 사탕봉지를 벗겼는데 시험관이 벗기지 말라는 손짓을 하고 다음 설명을 이었다. 들어보니 시험문제 중 하나가 그 사탕을 그리는 거였다. 봉지를 다시 싸는 대신 어쩔 수 없이 사탕을 봉지 위에 올려 그렸는데 밋밋한 사탕 표면을 그리는 것이 꽤나 곤혹스러웠다. 시험을 마친 후에야 입안에 문 사탕 맛이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 황당했던 실기시험 이야기를 친구에게 해주었고 그때 친구의 설명으로 왜 츄파춥스가 미술 시험문제로 나온 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탕을 싸고 있는 봉지의 로고 디자인이 유명한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츄파춥스를 만들 당시 그 기업의 사장과 절친이던 달리는 친구의 부탁으로 한 시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로고 디자인을 해주었고 막대사탕 꼭대기에 로고를 보이게 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덧붙여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디자인은 지금까지 거의 변형 없이 사용되고 있다.
상업적 로고이지만 그 안에 있는 대가의 디자인 요소 등이 있어서 특별히 실기시험 정물의 대상으로 사탕이 선택된 것이리라. 그러니 그 중요한 봉지를 벗겨버리고 그림을 그린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었을까. 시험에 붙은 걸 보면 그것이 오히려 독창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싶기는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농담 같은 시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스페인어 수업을 할 때 이 이야기를 해주며 사람들에게 츄파춥스 봉지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말하곤 한다. 가장 저렴하게 가질 수 있는 달리의 작품이라고 말이다. 이렇듯 아무 말 없이 나에게 던져진 츄파츕스가 간식용 막대사탕에서 ‘살바도르 달리의 무엇’으로 이해되는 그 길, 그 길이 다른 나라에 사는 시간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