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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실리 가는 길

덩굴 라일락 향기를 찾아서-#7. 사랑의 무대

by 시를아는아이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_서효인/<여수>


1.

오늘은 퇴근 무렵 예정에 없던 빗방울에 조금 설레며 짧게 퇴근길 산책을 하고 막 커피숍에 도착했어요. 걸어오는 동안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건물들의 불이 꺼지는 것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출판도시는 왜 이렇게 황홀한 무대를 낮 동안만 사용하고 밤에는 폐허처럼 버려두는 것일까?’


2.

물론 도시의 밤이 꼭 종로나 강남처럼 사람들로 북적여야 좋은 것은 아닐 거예요.

하지만 한때 퇴근길 복작거리는 골목길에 간이 탁자와 의자를 내놓고 유혹하는, 호프집이나 빈대떡집, 꼼장어집 사이를 헤치고 힘겹지만 곱게(?) 집으로 가는, 그 어려운 일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겪어 본 사람이라면, 이 출판도시의 적막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 거예요.

누군가는 여기가 꼭 촬영장 세트 같다고 하고, 다른 어떤 이는 영화 <트루먼 쇼>(1998)의 배경 같다고 한 걸 기억해요. 결국은 같은 말인가요? 실제로 여기에서는 사진이나 드라마 촬영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 곳이니까 출판도시에게 크게 억울한(?) 표현은 아닌 듯해요.


3.

그런데 최근에 개인적으로 이 세트 같은 도시에 피와 살이 돌게 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어요.

이 출판도시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서 함께 산책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 자연의 봄, 여름, 가을, 겨울 또는 사랑의 사계절을 천천히 함께 공유해 보는 것… .

이 도시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자신만의 그리운 도시로 만드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오직 그것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만의 사랑의 무대가 된 도시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p.s. 아쉽지만 이곳에 관해 이야기할 때 술 이야기는 하기 힘들 듯… . 잘 아시는 것처럼 여기는 거의 알콜 프리(?)에 가까운, 밤낮 멀쩡한, 특이한 도시니까요. 문화와 예술의 뿌리인 책을 만드는 도시에 술 한 잔 할 곳이 제대로 없다니… . 각성하라? 아니 취하라, 출판도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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