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으로 본 생각거리 22
주역을 읽을 때 처음 나오는 원형이정(元亨利貞) 대목과
씨름하다가 그 벽을 못 넘기고 책장을 덮는다.
원형이정은 사계(四季)이니
즉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의미한다.
사계(四季)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말 그대로 사계이니 4계절의 특성 정도만 알면 된다.
이를테면 봄은 계절의 시작이니 처음 태동하는 기운을 일컫는다.
여름은 만물이 녹음으로 뒤덮여 힘차게 뻗어나감을 뜻한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니 마무리하고 저장하는 것을 뜻한다.
겨울은 저장해 놓은 양식을 먹으며
매서운 찬바람을 이겨나가기 위해 참고 견디는 것을 의미한다.
사계(四季)는 이 정도만 이해하면 족하다.
괜히 단전에서는 어떻고, 문언 전은 어떠하니 등을
속속들이 이해하려고 머리를 싸매다가 흥미를 잃고 책장을 덮는다.
아니 아예 주역 책을 구석진 곳으로 밀쳐 놓는다.
단전, 상전, 문언전 계사전 등(소위 10 익(翼))은
유교의 철학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 자료이다.
유교의 논리를 배우고자 하지 않으면 몰라도 된다.
그런데 유교적 전통을 답습하여
주역 책은 단전, 상전, 문언 전, 계사전 등을 함께 실어
두툼한 책으로 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시중에 나와 있는 주역 책은
이러한 전통을 따라 두툼하다.
이러한 단전, 상전 등 소위 10익에 의하지 않고
독자로 주역 원래의 구절을 해석한다든지,
단전 상전 등에 어긋나게 해석한다든지 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유교를, 공자를 배척한 못된 인간으로
사회에서 이단아가 되었다.
소위 이전해경(以傳解經: 즉 단전, 상전, 계사전 등 전(傳)으로서
주역의 구절(經)을 해석해야만) 원칙을 따라
주역을 읽어야 하는 시대에 오랫동안 우리는 살아왔다.
주역의 원래 구절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지 않고
전(傳, 소위 10익)에 나오는 해석지침에 따라
해석하는 것이 말이 되나?
유교의 논리가 그득한 주역 책을 그 시절 보는 방식대로 본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지 않은가?
(나만의 주장이다.)
나는 바로 이전해경 방식이 아닌
주역의 원래 구절에 합당하게 해석하고
또 그렇게 이해하려고 애썼다.
사설이 길었다.
다시 원형이정으로 돌아와서 주역 17-0의 구절을 보자.
어느 여성이 사는 지금 세상의 바로 이웃한 세상은
물러나지 않으려고 몽니를 부리는
힘센 여성 실세가 권력을 장악한 세상이다.
서른 살이 넘도록 책임자도 못된 여성은
지금 세상에서 살아 내려 몸부림치지만
책임자 자리는 물 건너갔고 그에 비슷한 그럴싸한 자리도 없다.
결국 그 여성은 아무것도 검증이 안 된
소년이 부르짖는 개혁의 소리를 쫓아갈까,
아니면 이웃한 세상에서 힘깨나 쓰는 권력 실세에게
착 달라붙어 출세해 볼까 망설인다.
이웃한 세상도 지금 세상도 변동기로서 어수선하다.
주역은 이런 나라를 수(隨, 17)라 하여
그 특징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남의 뒤를 쫓는 삶도 의미가 있으니
시작할 때 시작하고 번성할 때 번성하고
거두어들일 때 거두어 저장하고
참고 견딜 때 참아내고 견디어 내야 남들의 비웃음이 없군요.
[수(隨) 원(元) 형(亨) 이(利) 정(貞) 무구(无咎)]
위 구절은 기본에 충실하게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남의 뒤를 쫓아간다고 뒤처져 있지 말고
시작할 때는 시작해야 한다.
또 뻗어나갈 때는 뒤처져 있지 말고 힘차게 뻗어나가야 한다.
거두어들일 때는 제 시기에 맞게 수확하여 저장해두어야 한다.
매서운 추위를 저장해 놓은 양식을 먹으며 참고 견디며 살다 보면
이윽고 따스한 봄날이 온다는 뜻이다.
수(隨) 나라는 변동기이다.
그 여성은 권력 실세를 따라 출세를 할까 망설인다.
또 개혁을 부르짖는 소리를 따라 모험을 하려고도 한다.
이때 주역은 그 여성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뒤에서 쫓아가는 삶도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고 한다.
빈한함(겨울)이 끝나면 따스함(봄)이 오고
이어 풍성함(여름)으로 덮인다.
풍성함 뒤에 넉넉함(가을)이 갖추어지고
다시 빈한함(겨울)이 오는 시대로 된다.
사계는 순환된다.
빈한함이 오는 겨울에는 모든 만물이 숨죽이며 산다.
밖은 추워 나가지 못하고 모두 움츠린다.
겨울밤은 왜 그리 긴지.
가을에 저장한 곡식을 야금야금 파먹으면서.
양식이 충분치 못한 집에서는 비싼 고리대를 물으며
보릿고개를 겨우 넘긴다.
그래도 버티어야 한다.
보릿고개를 넘기면 지천으로 깔린 먹을 것들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사계의 순환처럼 따스함 풍성함을 거쳐
넉넉함 빈한함 등으로 돌고 도는 생활을 한다.
다가오는 따스한 봄날엔 형편이 나아지겠지 하며.
주역(17-3)은 그 여성에게
변동기에는 괜히 앞서가고자 권력 실세에 붙을까,
개혁의 소리를 따라갈까 고민하지 말고
느긋하게 남들이 하는 짓을 유심히 보았다가
뒤에 따라가도 구하는 것이 있으면 이득이 있군요.
그러니 참고 견디는 처지에 있으면
이롭게 된다고 주역은 말한다.
변동기에는 숨죽이며 겨울을 나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한다.
주역은 그때 그 여성에게 뒤에 쫓아간다고
구하는 것이 소진되어 없을까 서운히 생각하지 말고
분명히 나름의 이득이 따라오니 참고 견디면
이내 봄이 오듯 따스한 날이 온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 말하고 있다.
[계장부(係丈夫) 실소자(失小子)
수(隨) 유구(有求) 득(得) 이거정(利居貞)]
우리는 지금의 세월을 겨울 기라고
참고 견디는 자세로 살고 있는가?
지금은 변동기이다.
모든 것이 어수선하다.
그런 때는 숨죽이며 살되 기본에 충실하게 갖추어 놓으면
참고 견디는 시절을 보낸 날들을 보상할 그런 날이,
따스한 봄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