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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심시켜 주기가 필요할까?
(선갑삼일 후갑삼일)

-주역으로 본 생각거리 23

by 스테파노

로저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은 매우 독특하여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느낄 때,


또는 고립감을 심하게 느껴 외톨이로 지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안심시켜 주기(reassurance)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한다.


안심시켜 주기는 쉽게 말해서 같이 대화를 나누는 중에

죄의식이나 과도한 불안감에 싸여 있는 사람에게

‘안도감이 들게 하네, 지지받고 있다고 느끼게 하네,

조금 더 도움이 되는 말을 하네, 조금 더 자신감이 들도록 하네(카힐 등)’ 등의

말을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18-3)을 보자.


청년은 책임자 경합에서 후배에게 밀려 침울하다.

게다가 청년은 순종의 미를 강조하는

겸손 문화의 분위기 때문에 도통 생기가 없다.


청년의 뜻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으나

현실에서는 답답한 환경 때문에 축 처져 있다.


청년은 지금 사는 세상을 떠나서

이웃한 세상에서 새로운 날개를 펼칠까 생각 중이다.

그래서 그 청년은 이웃한 세상에서

힘깨나 쓰는 실력자를 만나려 한다.


그러나 청년은 비빌 언덕 삼아 실력자를 만나는 것은 좋으나

그 실력자가 저지른 나쁜 병폐를 고스란히 떠안을까 봐 망설인다.

이웃 세상의 실력자는 은퇴 시기를 지났으나

권력에 집착하여 기생충 같은 짓을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이란 영화가

아카데미 수상을 하였다.

바로 그 영화 제목과 같은 기생충(고, 蠱, parasite) 짓

즉 나쁜 벌레 같은 짓을 한다는 의미이다.


청년은 실력자에게 몸을 의탁하여 새 세상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볼까 다짐하다 가도

실력자가 저지른 기생충 짓을 떠안을 생각이 들면

마음이 산란하여 쉽게 결정치 못한다.


주역은 고민만 하는 청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기생충병을 맡아서 처리해야 하는군요.

후회함이 있으나 작고

큰 허물은 없네요.

[간부지고(幹父之蠱) 소유회(小有悔) 무대구(无大咎)]


주역은 이웃 세상에서 은퇴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권력을 주무르는 실력자를 청년의 아버지라고 했다.


만약 청년이 이웃 세상에 있는 실력자를 찾아가

의탁하여 살림을 꾸려간다면

그 실력자는 막강한 가부장 체제에서

청년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청년은 패배 의식을 씻어내려고

실력자의 힘을 빌려 이웃 세상으로 가려한다.


그러나 청년이 만약 그렇게 한다면

틀림없이 권력의 노예가 되어 같이 나쁜 짓을 할 것이다.

그래서 청년은 비굴한 노예가 되려 한다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망설이는 중이다.


주역은 청년의 저 깊은 속내를 이해하고

드러내어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노골적으로

‘기생충 짓을 맡아서 처리해야 하는군요.’라고

대화의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밖으로 드러내어 거론하고 싶지 않은 화제를

주역은 굳이 대화의 화제로 삼는 이유가 있다.

주역은 청년에게 도전의 의지를 세워주기 위해서이다.


‘기생충 짓을 떠맡을지라도 실력자에게 가라,

마음에 부담되는 후회할 일이 생기겠지만

후회되는 일은 작고

또 큰 허물은 걱정해서 되도록 없애야겠지만

작은 허물은 부닥치는 인간관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니

겪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도전 의지를 주역은 청년에게 세워주고 있다.


소유회(小有悔) 즉 후회되는 일은 없을 수 없으나 그 정도는 작으니

참을 만하지 않은가?

무대구(无大咎) 즉 큰 비웃음 살 거리는 없으니

작은 비웃음은 살면서 이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용기를 주는,

카힐이 말하듯 조금 더 자신감이 들게 하는 말이지 않은가?


이렇듯 안심시켜 주기는 고민하는 사람에게 말해주어

‘안도감을 주네, 조금 더 도움이 되네,

조금 더 자신감이 들게 하네.’ 등의 효과를 낸다.


주역은 왜 그렇게 청년을 도전시키는 데 몸 바쳐 매달릴까?

즉 소유회(小有悔)라고 후회는 적으니 괜찮다고 격려를 해주며

무대구(无大咎)라고 남들의 비웃음 중에서

큰 비웃음은 없도록 신경 써야 하지만

늘 상 인간관계를 하다 보면 작은 비웃음 정도는

스스로 이겨나가야 한다고 도전 의지를 심어줄까?


이유가 있다.

청년이 사는 고(蠱) 나라는 기생충병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청년이 사는 지금 세상은 겸손 문화의 영향으로

주체성이 없이 이리저리 나부끼는 갈대와 같다.


청년이 살고자 하는 이웃 세상도

실력자가 권력을 마구 사용하여 답답해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청년은 살 기운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한 상태로 빠져들 확률이 농후하다.


가뜩이나 청년은 패배자이고 서른 살이 넘도록 변변한 직책도 없다.

이웃 세상으로 가려해도 권력의 종이 되어

권세를 이용하려 한다고 남들의 비난이 넘쳐날 것이 뻔하다.


주역은 그런 상황에 놓여있는 청년에게

소유회, 무대구라고 안심시켜 주기를 해주고 있다.


주역의 같은 괘 괘사에서는

선갑삼일(先甲三日) 후갑삼일(後甲三日)이란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은 시작하기 전 삼일, 시작한 뒤의 삼일을

신중하고 또 조심하라는 뜻이다.


괘사는 같은 괘의 모든 구절에 영향을 주니 3 효에도 적용된다.

주역은 비록 권력의 주구 역할을 한다고 업신여기지 않는다.


비록 나쁜 일을 할까 봐 두렵겠지만

내가 아니면 남 들 중 어느 사람이 그 일을 할 것이므로

시작하기 전 삼일, 시작하고 난 후 삼일을

꼼꼼히 챙겨 나쁜 일이 안 생기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란 뜻이다.


다시 말하면 안 하는 것보다 하는 쪽이 나으니

그때는 나은 길을 선택하되

남보다 꼼꼼하게 챙겨 떳떳하게 나서면 될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기를 한다.


선갑삼일, 후갑삼일은 도전하되

혹시 있을지 모르는 후회 거리를 꼼꼼히 챙겨

후회 없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우리는 살다 보면

좋은 일, 나쁜 일, 격정으로 가슴 떨게 흥분시키는 일,

허무로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일 등이 많이 생긴다.


그럴수록 선갑삼일 후갑삼일 꼼꼼하게 챙기라는 뜻이다.

괜히 들떠 날뛰다가 작은 흠이

커다란 흠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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