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치심(수, 羞)

-주역으로 본 생각거리 24

by 스테파노

주역에는 ‘부끄러워하다, 수치심’을 나타내는

수(羞)란 단어가 종종 나온다.

수(羞)는 원래 ‘손에 음식을 들고 권하다,’라는 뜻이다.


음식을 들고 권할 때 흔쾌히 음식을 받고 이를 고맙게 여기면

그야말로 ‘나도 행복하고 상대방도 행복한’

I,m OK, You,re OK. 상태가 된다.


그러나 세상일이 어디 그런가?

권하는 사람의 뜻에 반하게

상대방은 노골적으로 음식 받기를 거부한다거나

외려 무시하고 딴청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권하는 사람은 내민 손을 부끄러워하며

수치심에 어쩔 줄 모른다.


주역(12-3)을 보자.


서른 살을 넘긴 여성은 책임자 경합에서 또 떨어졌다.

그 여성은 패배로 인해 남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아 시무룩하다.


특히 주변엔 여성들뿐이어서 찌질한 그 여성에게

자기들끼리만 쉬쉬하고 왕따를 시킨다.


그 여성은 ‘능력도 없는 사람’이라고 비난이 들리는 것 같아

사람들을 만나기 두렵다.


그 여성은 왕따 취급받는 것이 너무 싫어서

먼저 나서서 친절을 베푸는 등

주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애쓴다.


주역은 이런 얘기를 듣고 난 후 그 여성에게 이렇게 말한다.


“감싸여 있으면 부끄러워하고 미워하게 되는군요.

[포(包) 수(羞)]”


포(包)는 ‘감싸여 있다’란 뜻이지만

원래 ‘배 속의 아이’라는 뜻으로

뭐라 대꾸할 내 대꾸할 처지가 아닌

대답이 애초에 불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수(羞)는 ‘부끄러워하다, 미워하다’의 뜻으로

고대에는 원래 ‘음식을 들고 권하다’란 뜻이었다.


위의 말은 풀어쓰면

“손에 음식을 들고 권했으나

상대방은 배 속의 아이처럼 푹 싸여 대꾸가 없으니

권한 사람은 거부당한 것처럼 느끼어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다.”라는 뜻이다.


풀어쓴 위 구절에서 살포시 이야기의 진실이 밀려온다.

즉 그 여성은 왕따 신세를 면하려고 친절을 베풀지만

그로 인해 또다시 왕따 걱정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드는

애처로운 상황을 겪는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가?

주역은 참으로 현명하다.

그 여성에게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을 알게 해 준다.

바로 직면의 방법으로.


주역은 그 여성에게 차분하게 생각과 생각을 하여

다시 말하면 통찰하여 그런 상황에 있음을 터득하게 만든다.


즉 주역은 그 여성에게

음식을 권하는 것조차 모르는 배 속의 아기로부터

감사하다는 인사를 웃으며 받을 것을 기대했으나,


그러나 좋은 일을 하겠다고 친절을 베푼 자신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수치심과 미워함만을 떠안았으니,

아뿔싸! 스스로 못난 사람임을 드디어 깨우쳐 알게 된다.


위와 같이 주역은 그 여성이 행한 좋은 취지는 어디 가고

수치심과 미워함을 떠안은 왜곡된 사실을

직면의 형식으로 그 여성에게 얘기해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스스로 가슴을 치며 아파할 때는 아파야 한다.

그럼으로써 알게 되는 깨우침을 얻을 수 있으니까.


주역은 군더더기가 없다.

직면시켜 알게 하는 포(包)와 수(羞) 두 단어만으로 상담을 끝낸다.

더 이상 말을 놓으면 사족(蛇足)이다.


수(羞)는 수치심이기 때문에

자기만이 속으로 끙끙대며 앓는

어디 가서 겉으로 드러내어 말하기조차 쉽지 않은 감정이다.


그러므로 혹여 수치심을

제압할 위치에 있음에도 제압하지 않는,

다시 말하면 남의 정원을 지나가면서도 그 사람을 보지 않는

[기배(其背) 불획기신(不獲其身) 행기정(行其庭) 불견기인(不見其人)]

특별한 배려가 필요한 감정이다.


또 수치심은 하늘이 내린 큰 벌에 해당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작은 일로 치부하여

얼마든지 이를 극복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작은 일이면 길하다(小事 吉)’라고 한다.

‘작은 일’이란 비록 큰일에 해당하지만

작은 일로 여겨 대응하라는 뜻이다.


상담에서는 ‘큰일이면 작게’란 말을 많이 한다.

큰일은 호들갑은 떨어 자꾸 크게 만든다.

일을 크게 만들수록 해결되지 않는다.


남들 눈에 큰일에 치여서 헤매는 꼬락서니를 보이기 싫어

일을 자꾸만 빨리 처리해서 부담을 적게 하고

흠 없이 깨끗한 존재가 되려고 몹시 서두르기 때문이다.


서두르면 탈이 난다.

그러지 말고 수치심 등은 큰일이나 작은 일이라 여기고

남들 눈치 보지 말고

꾸준히 해결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다.


(코를 베는 형벌을 받은 사람은

창피해서 가면을 쓰고 살지만

생각하기 따라 그런 창피함은 작은 일이라 여기고

대처하면 나름대로 뜻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keyword
이전 23화왜 안심시켜 주기가 필요할까? (선갑삼일 후갑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