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나오는 동물, 식물 그리고 무생물 11
주역(47-3)에 남가새 풀(질려, 蒺藜)이 나온다.
“육삼 씨 돌에서부터 곤란을 당하고
남가새 풀에 의존하는군요.
집으로 들어가
아내를 보지 않으면 흉하네요.
[육삼(六三)) 곤우석(困于石) 거우질려(據于蒺藜)
입우기궁(入于其宮) 불견기처(不見其妻) 흉(凶)]”
남가새 풀은 도대체 어떤 식물일까?
사전에는 남가새 풀을
바닷가 모래밭 등에서 사는
한해살이 식물이라고 짧게 설명되어 있다.
인터넷 등을 뒤지다 보니
우리나라의 경상도에서도 자생하는 흔한 식물이었다.
남가새 풀은
첫째, 한해살이 식물로 겨울이 닥치면
시들어버려 장기간 의지할 곳이 못 된다.
둘째, 털이 거칠하며 날카로워서
가시가 되어 사람들을 아프게 하므로
임시방편으로는 몰라도 오래 의지할 수는 없다.
셋째, 자라는 곳이 바닷가 모래밭 등 황량한 곳으로
배수진을 써 죽기 아니면 살기로 이용하지 않으면
의지할 곳으로 적합지 않다.
남가새 풀의 특성이 이러하니
주역이 말한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연합군의 여성 최고 사령관인 육삼은
변방에 있는 또 다른 젊은 여성과 연합하여
협공으로 남성 장수를 몰아붙인다.
처음에는 던져도 깨지지 않는
딱딱한 돌 같이 기세는
여성 연합군이 우세했다.
그러나 연합군은 생각보다 명령이 잘 서지 않아
오합지졸로 싸우니
돌 같이 강하던 전세는 하루아침에 바뀐다.
게다가 막강한 후원자이며
이웃한 세상에서 권세를 마구 휘두르던
여성 실력자가 유폐되었다는 사실이 들려온다.
전투 사기는 급전직하로 곤두박질친다.
최고 여성 사령관은 은폐 엄폐도 안 되는
퇴로가 막힌 곳에서 마지막으로 싸우려 한다.
마치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으로 싸우듯.
남가새 풀은 분한 마음에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그 여성(육삼)의 상태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주역은 그 여성에게 전황의 민낯을
솔직히 직면시켜 사실을 직시하라고 한다.
곤궁한 남가새 풀에 의지한다는 의미는
마지막으로 장렬한 죽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라고.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 장군이 무참하게 패하듯이.
왜 그 여성은 승산도 없는 싸움에
그렇게 매달릴까?
분한 마음에 증오심이 활활 타올랐기 때문이다.
그 여성은 후배 남성에게
책임자 자리를 빼앗겨
미움에 푹 젖어 있다.
거기에 후배 남성은 선배를 무시하고
책임자 지위를 내세워
권위적인 태도로 사사건건 간섭한다.
그러니 그 여성은 후배 남성을 미워할 수밖에.
그 여성은 후배 남성에 대한 미움을
증오심으로 키워 드디어 싸움으로까지 번진다.
만약 썩어 없어질 그 알량한 자존심에 매여
그 여성이 싸움을 계속한다면
끝은 뻔하다.
죽음으로.
위기상태에 있는 그 여성에게
주역은 꽤 신선한 처방을 내리고 있다.
주역은
“집으로 들어가 아내를 보라고.” 한다.
미움이 들끓는 싸움터에선
싸움 이외는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다.
싸움 걱정만 하는 곳에서 일단 벗어나
차분하게 아내와 같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해
숙의해야 묘수가 생긴다.
그 여성은 아내를 둘 수 없다.
그 여성은 싸움터에서
막강한 최고 사령관 역할을 한다.
그러니 그 여성은 남성들보다
더 남성 같아서 주역은 아내라는 칭호를 썼다.
여기서 아내는 차분하게 조언해 주는 가족을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생명을 건 비상사태에 놓여있다면?
아마도 증오심에 뒤덮여 보지 못하는 현명함을
되찾게 하는 것이 시급할 것이다.
분노가 소용돌이치는 곳에서는
분별력을 잃고 증오 이외는
아무런 생각도 못 하기 때문이다.
그때 무슨 말을 해줄까,
불편한 그 사람을 어떻게 위로하나 등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어깨를 빌려주거나
떠나 있을 곳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