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옆 화단에는 샛노란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 봄 내음이 책상 위로 스며든 햇살에도 살포시 내려앉았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렸다. 그래도 여전히 교실은 시끄럽기만 했다. 요란법석하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누가 교실 문을 밀치고 들어왔다.
중학교 1학년을 담당하는 이번에 새로 부임한 미술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들어서자마자 손을 흔들며 “여러분, 안녕”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첫 대면부터 남달랐다. 선생님은 군대처럼 딱딱한 의례적인 인사를 학생들로부터 받기 전에 먼저 정감 넘치게 인사했다.
대부분 선생님은 인사를 받기 위해 우선 교탁으로 갔으나 미술 선생님은 그러지 않았다. 교탁 있는 교단이 아니라 학생들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차렷, 경례를 준비하던 반장이 머쓱해서 자리에 앉지도 그냥 서 있을 수도 없어 어쩔 줄 몰라했다.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손을 아래로 까닥까닥하며 반장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출입문에서 넷째 줄쯤, 3 열인가에 멈추어 한 학생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이때도 그 학생에게 미소 띤 모습으로 “잠깐, 앉아도 되지요?”하고 양해를 구하였다. 그리고는 아이들을 휘휘 둘러보며 한 사람 한 사람과 끄덕끄덕하며 눈인사를 교환하였다.
선생님은 학생들과 일일이 눈인사를 마치자 뜬금없이 “여러분 막사이사이에 대해 아십니까?”라고 물으셨다. 당시만 해도 방송에서 막사이사이에 관해 심심찮게 나왔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학생들은 필리핀 전 대통령, 막사이사이상, 비행기 사고로 죽다 등 나름 아는 대로 대답했다.
선생님은 만족한 듯 씨-익 웃더니만 “똑같은 질문을 모 여중에 있을 적에 했었는데 한 여학생이 일어나 설명을 이렇게 했지요.”라고 말했다. 남학생만 있는 교실에서 여중, 여학생이란 소리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귀를 쫑긋 세우며 관심을 쏟았다.
“막사이사이를 어트게 설명혀야 냉큼 알아들을까--유? 숫제 예를 맹글어보는 것이 펜겠시--유, 글씨, 춘향 처네와 이 되령이 나오는 연극 있잖어--유, 춘향 처네는 형틀에서 뒤지게 매를 맞었—유, 뭐--여!?, 괜찮어--유, 죽기밖에 더하겄--슈. 그런데 시방 이 되령이 신관 사또로 됫구먼--유. 참말로 그때 마춤 클라이맥스 막이 열릴락 말락 할 시점이네--유, 바로 막과 막, 고 짤룹한 틈새기를 막사이사이라고 허지--유”
그때 선생님은 여학생의 사투리와 억양, 특유의 느리고 어눌한 말씨, 우스꽝스러운 모습 등을 맛깔나게 흉내 내었다. 선생님은 권위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오로지 그 여학생의 모습과 대사를 연극배우처럼 그럴싸하게 연기하였다.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젊은 여자아이의 흉내를 낸 억양이나 느린 듯한 몸짓 그리고 발음이 새는 듯한 목소리는 교실에 있는 아이들을 웃기기에 충분하였다. 선생님은 단번에 인기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의 인기 비결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유머가 그 당시엔 재미있었기도 했지만 다른 특별한 무엇이 있었다.
선생님은 권위로서 학생들을 다루려 했기보다는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 아이들과 하나가 되려 한 점이었다. 교탁이란 선생님을 상징하는 자리를 버리고 아이들과의 교감을 나누는 책상을 선택한 점, 권위는 땅에 떨어져 굴러다녀도 오직 아이들 편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여학생의 행동을 흉내 내며 심하게 무너진 모습을 보인 점, 어떤 학생에게도 이야기에 주목할 수 있도록 거부감을 털게 일일이 눈인사를 교환한 점 등이 모든 얘들을 유쾌한 흥분 속으로 몰아 놓았다.
웃음바다가 된 교실에서 선생님은 얘들과 같이 웃다가 어느 정도 분위기가 수그러들 때 학생들을 둘러보며 다음 말을 이었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랬다고, 여러분들에게 똑바로 말하겠습니다. 다음 미술 수업 시간에는 모두 사전 준비물을 잘 챙겨서 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자주 쓰는 HB 연필이 아니고 4B연필과 그리고 스케치북을 꼭 준비해 오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교탁 있는 데로 걸어가서 칠판에 준비물인 4B 연필, 스케치북과 황 oo이라고 이름 석 자를 썼다. 선생님이 칠판에 다 쓰고 돌아서서 정면을 보고 서 있을 때, 그때야 비로소 학생들은 선생님께서 삐뚤어진 입 이야기를 그냥 농담으로 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선생님의 입이 진짜로 비뚤어진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떳떳하지 않은 핸디캡을 “입이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랬다.”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그렇게 넘기셨다.
선생님은 오히려 ‘삐뚤어지다, 똑바로 하다’라고 반어법을 이용해 말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런 까닭에 선생님도 아이들도 핸디캡이란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다 잊어버렸다.
미술 시간이 끝나고 난 후에도 학생들은 선생님께서 보여준 유쾌한 감동을 잊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선생님의 시간만을 기다렸다. 황 선생님이, 미술 시간이, 그림이 갑자기 좋아졌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형편이 좋지는 않아 아이들은 얄팍한 도화지에 크레용으로 낙서하듯 그림을 그렸었다. 이제 멀쩡한 중학생이 되어서 4B 연필로 스케치북에 그림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데 아이들은 흥분하는 눈치였다.
유머는 어떨 때 사람들을 유쾌하게 웃게 할까? 유머를 다룬 책에서는 유머를 듣고 기분 좋게 웃으려면 듣는 사람이 알게 모르게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낄 때라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선생님의 유머는 분명 학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상대적 우월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선생님이란 권위가 주는 막강한 힘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기꺼이 희극배우가 되었으니까. 우스꽝스러운 웃음의 제물로써 자신을 내버렸으니까. 그런데 그보다도 나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힘이 되었던 것은 열등의식을 극복하는 선생님의 마음 자세였다.
그날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최고의 압권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의 핸디캡을 떳떳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것을 넘어서 웃음으로 밝게 승화시키는 넓은 마음 자세였다. 오늘도 나는 심리학자 아들러(Adler)의 열등감은 축복이란 말을 되뇌면서, 선생님의 당당했던 그때 그 모습을 닮고자 애쓴다. 그립고 그립다. 황 선생님이. 학창 시절이. 꿈이 영글어가던 그때 그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