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를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이시돌 목장에서 여장을 풀고 주변을 관광하는 알뜰 여행팀과 일행이 되었다. 여행 일정에는 한라산 등정도 끼어 있었다. 여행 일정이 빠듯하게 잡혀 한라산은 오후에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한라산을 오르는 날이다. 부득이 성인 남자만 올라가고 여자와 열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은 차 주변에서 산책하기로 했다. 여행 규칙이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인지, 우리 일행만 그렇게 정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 일행만 오후에만 등반하니 산행이 벅차 가기 어려운 여자와 아이들은 제외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 집 작은아들이 문제이었다. 이제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8살밖에 안 되었으나 가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산행이 힘들고 위험하니 아들은 다음번에 오르고 이번은 아빠만 갔다 오자.’라고 설득했으나 아들은 백록담을 보아야 한다고 막무가내였다. 별수 없었다. 중간에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함께 가야만 했다.
처음에는 신이 나 아들은 잘 올라갔다. 그러나 어른도 지쳐 헉헉대는 산길을 아이한테는 무리였다. 앞서가던 일행과 갈수록 멀어졌다. 벌써 등반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다. ‘조금만’은 지친 우리를 격려하는 의례상 말투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저분들이 조금만 가면 된대.’라고 아들을 위로하기에 바빴다.
빙빙 돌아 오르는 산길은 경관이 좋았다. 하지만 늦지 않게 올라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에 매어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산에 올라가 백록담을 보았다.
백록담의 물은 생각보다는 훨씬 적었다. 아들은 ‘애개! 저게 백록담이야?’하고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는 하산길이 문제였다. 다리가 풀려서 그런지 내려오는 길이 더 어려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아들은 괜히 왔다고 투덜거리며 걸핏하면 주저앉았다. 아들은 오를 때에는 백록담의 물이 큰 호수처럼 넘실대는 모습을 그려도 보았을 것이다. 또 눈으로 직접 본다는 목표가 있어서 힘들어도 올라갔을 것이다.
아들은 그러나 지금은 지쳐 다리만 아플 뿐이었다. 나는 그 애를 업어주다가 지치면 걷게 하면서 부득이 천천히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척거리다 보니 이제 겨우 반 정도밖에 못 내려왔는데 아래에서 만나기로 정한 시각을 훌쩍 넘기고야 말았다.
내려오는 길은 일행도 없고 벌써 날은 어둑어둑해졌다. 비는 간간이 내렸지만 이러다가 큰비라도 만나면 큰일이었다. ‘조난’이란 단어가 자꾸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아들에게 ‘이제 다 왔다. 조금만 가면 된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내려오다 보니 일행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일행들이었다. 기다리다 못해 우리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정해놓은 시간을 한 시간 반 넘긴 뒤에 우리는 도착했다. 날은 이미 컴컴했다. 일행에게 미안했지만 그나마 늦게라도 도착한 게 다행이었다.
서울로 와서 일상으로 돌아왔으나 제주도의 맑은 공기, 산세의 우아함 등이 이따금 생각났다. 그러나 정작 제주도에 갔다 온 감흥은 아들에게 깊게 박혀 있었다.
아들은 ‘어떤 어려움도 그때의 한라산 등반보다는 못했을 것’이라고 느낀 것 같았다. ‘힘들게 한라산도 올랐는데’ 하며 자기를 위로하고 힘을 내는 지표로 사용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하고많은 사진 중에서 한라산에서 찍은 사진만이 줄곧 아들 책상 앞에 붙어 있었다. 이후 5학년 때 독일로 전학 가서도 책상 앞에 늘 상 그 사진이 붙어 있었다.
하루는 ‘이거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이잖아?’라고 아들한테 말을 건넸다. ‘응, 고생한 게 생각나서’라고 아들은 마음을 들킨 것을 쑥스러워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대답했으나 아들의 속내가 훤히 보였다.
아들은 학우와 다툼이 생겨도, 말 서러운 독일에서 소통이 어려워도 사진을 보고 스스로 위안 삼고 힘을 얻는 것을. 몸으로 겪은 체험보다 더 좋은 것은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