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에 담은 희원(希願)

by 스테파노

6학년이 되자 반이 두 개에서 하나로 줄었다. 중도에 학업을 그만둔 친구들이 많아서다. 어차피 중학교에도 못 갈 걸 바쁜 농사일 등 집안일을 추어야지 졸업은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취지에서.


그때도 의무교육제도는 시행되었겠지만 아마도 지금같이 엄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60명쯤 되는 6학년생 전부가 중학교에 갈 처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여자 20여 명 중에서 5~6명 정도, 남자 40명쯤에서 한 25명 남짓이 중학교에 가려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는 중학교도 시험을 보고 들어갔으며, 면학 분위기는 높은데 학교는 적어서 중학교에 들어가기가 만만치 않았을 때이었다.


6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지 1주일 정도 지나서 담임이던 김 00 선생님은 무엇인가 들고서는 교탁을 왼쪽으로 옮기자고 하셨다.



김 선생님은 교탁 위에 올라가 망치를 들고 못을 박더니만 세로로 된 족자를 걸으셨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만....(중략)’

양 사언 선생의 시조이었다.


그리고는 교탁을 옮겨 이번에는 칠판 오른쪽에다 마저 하나를 걸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늙기도 설어라 커늘 짐조차 지실까...(중략)’

정 철 선생의 시조이었다.


학생들 모두에게 오른쪽부터 시조 두 수를 읽으라고 했다. 선생님은 특별히 시조를 두고 설명도 없으셨다. 다만 내일부터는 공부를 시작할 때와 저녁 종례 시간에 각기 한 번씩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하셨다.


아이들이 다 같이 음운을 맞춰 시조 읽는 소리는 참으로 듣기 좋았다. 1달쯤 지나서인가 아이들은 보지 않아도 족자에 쓰인 내용을 알았다.


2달쯤 지나서 선생님은 눈을 감고 시조 내용을 생각하며 작은 소리로 천천히 암송하라고 주문했다.

음운은 여전히 맞추어야 했다. 낮은 소리로 시조 읊는 소리는 화음을 잘 맞춘 노래 같았다.


시조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 시조가 무슨 내용인지, 그때 암송하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시조를 암송할 때면 왠지 나도 모르게 ‘열심히 해야지,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며 손에 불끈 힘이 솟았던 것을 기억한다.


공부해라, 노력해라, 효도해라, 그런 상투적인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노력은 무엇인가 이루려고 바랄 때 자연히 샘솟는 법이다.


가슴이 포근하게 가르친 선생님은 훗날 생각해보아도 김 선생님 외에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 선생님의 선한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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