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치 Apr 17. 2024

S&M : 생애 첫 음반 구입기

by METALLICA (1999)


 처음 교복이란 걸 입고 학교를 다닌 지 1년이 지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다. 품이 큰 재킷을 입은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우리는 겨울날 소중한 햇살을 뒤로한 채 그늘진 학교 뒤편으로 향했다. 같은 반 L모군이 재킷 주머니에서 카세트 플레이어를 꺼내어 나와 다른 친구에게 건넸다. 정말 이런 거는 못 들어봤을 거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1번 곡을 들어보라는 L의 말에 우리는 각각 이어폰을 한쪽 귀에 나눠 꽂고선 테이프를 처음으로 돌렸다. 멀리서 아련하게 ‘두구두구’ 소리가 들려왔다. 말 달리는 소리인가 공사판의 소음인가 싶던 그 울림은, 이내 나와의 거리를 좁히며 기타와 드럼의 굉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격렬한 리프. 속주. 포효. 솔로. 그 곡의 제목은 <Hit The Lights>였다. 아니 불 켜라는 말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화를 내나? 싶다가도 생전 처음 듣는 금속성 음악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야속하게도 친구 L모군은 우리에게 그 한 곡만을 들려주고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도로 낚아챘다. 그러고는 ‘다음 주 수요일 수요예술무대에 메탈리카 공연을 틀어준다니까 보던지'하며 여운을 남겼다. 그 일주일 동안은 수요일만을 기다리며 지냈던 것 같다. 신문 기사를 보니 공중파에서 메탈리카의 공연을 방송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녹화도 해야겠군! 안 쓰는 비디오테이프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이곤 녹화를 위한 만반의 준비도 끝냈다.


 그렇게 찾아온 수요일 저녁. 가족들은 모두 잠에 들었고, 나는 캄캄한 거실에서 붉게 파랗게 빛나는 TV화면을 홀로 주시했다. 그날의 수요예술무대도 이현우와 김광민의 나긋한 입담으로 시작했다. 메탈리카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랑 협연을 했답니다. 아 그렇군요. 곡 제목이… <No Leaf Clover>. 잎이 없는 클로버라. 어쩜 이렇게 제목도 멋지게 짓는지요. 대충 이런 대화가 오고 간 후 메탈리카의 공연 실황이 이어졌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노련하게 연주하는 밴드와, 그 배경에 웅장하게 자리 한 관현악단, 열광하는 관객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 놀라움을 넘어 충격적인 퍼포먼스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느낄 감 움직일 동. 감동은 가슴의 움직임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난생처음 제대로 된 공연을 마주한 중학생을 상상해 보라. 그게 바로 그날의 나였다.

 이튿날 학교가 끝나고 나는 시내 쇼핑몰 1층의 레코드샵으로 향했다. 음반가게이지만 한쪽 구석에서 마사이슈즈도 팔고 머리핀이나 인형 같은 것들도 떼다가 팔던 그런 가게였다. 그런 가게에도 메탈리카의 신보가 들어와 있던 놀라운 시절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S&M> 앨범을 사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의지로 구입한 생애 첫 음악 CD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방구석에 처박혀있던 싸구려 오디오데크에 CD를 집어넣었다. 변변한 플레이어도 제대로 없던 때였다. 하지만 메탈리카의 음악은 조약한 기기에서도 웅장한 사운드를 뿜어내주었다. 그것은 나만을 위한 작은 공연처럼 느껴졌다. 메탈리카 전통의 오프닝곡인 <The Ecstasy Of Gold>를 필두로 <The Call Of Ktulu>, <Master Of Puppets>, <The Thing That Should Not Be> 같은 대곡들이 실제 공연처럼 트랙 분절 없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6분이 넘어가는 긴 곡들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매분 매초가 생경하고 신기했다. 그야말로 별세계였다.

 수록곡 중에는 <Hero Of The Day>나 <Until It Sleeps>, <The Memory Remains> 같은 비교적 말랑말랑한(?) 곡들도 더러 있었다.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 곡들이 <LOAD>와 <RELOAD> 앨범의 수록곡들이며, 그 음반들에 대해 올드팬들의 호오가 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저주받을 연작의 곡들이 다수 포진된 <S&M>에 대한 평가 또한 덩달아서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역시 쌍팔년도 때부터 메탈을 듣던 삼촌뻘 형님들의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메탈리카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편견도 없었던 나는 그저 <S&M>을 반복해서 들을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LOAD>, <RELOAD> 연작의 곡이든 초기 세 앨범의 강성 스래쉬 메탈이든 똑같이 사랑하게 되었다. 메탈리카를 좋아하다가 메탈을 빠지고, 메탈을 좋아하다가 록에 빠지고, 팝에 빠지고, 이 음악 저 음악 닥치는 대로 찾아들었다. 그러기를 한 20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아저씨가 되고 말았다.


 2017년에 메탈리카의 내한공연이 있었다. 당시 <Hardwired... To Self-Destruct>가 나오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Atlas, Rise!>나 <Moth Into Flame> 같은 신곡들이 많이 연주되었다. 메탈리카의 보컬 제임스 헷필드는 괜히 먹쩍게 웃으며 ‘신보에 있는 곡들인데 들어줬으면 좋겠다. 좀 있다가 너희들이 원하는 곡들도 부를게’라는 식의 멘트를 했다. 큰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밴드와 관객이 함께 나이를 먹는다라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공연 중간 잠시 들른 화장실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긴 머리 휘날리는 검은 가죽 재킷의 형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하게 공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생리현상이 급한 와중에도 행복과 설렘이 가득한 웃음들. 긴 시간 익어 온 푸근하고 정겨운 파안대소. 나 또한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2019년에는 메탈리카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가 다시금 협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99년 이후 장장 20년 만에 나오는 <S&M>의 후속작이었다. 밴드는 <S&M>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20년 전 그때처럼 떨리는 마음으로 <S&M 2> 앨범을 샀다. 다만 이번엔 매장에서 직접 사지 않고 아마존을 통해 클릭 몇 번으로 구입을 완료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미국에서 날아온 음반을 받아 제대로 된 CD 플레이어에 집어넣으며 계속 되뇌었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세월이 흘러 메탈리카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마이클 케이먼은 고인이 되었지만 예전의 웅장함과 파괴력은 거의 그대로였다. 새로 녹음된 <No Leaf Clover>를 들을 때는 거의 눈물이 날 뻔도 했다. 잎이 없는 클로버라. 어쩜 이렇게 제목도 멋지게 짓는지요.


Release Date  November 23, 1999

Duration  133:14

Recording Location Berkeley Community Theatre (Berkeley, California)


===

  

      공연은 1999년 4월 21일과 22일 양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No Leaf Clover> 와 <-Human>은 본 공연과 앨범을 위해 만들어졌다.

     <S&M> 은 베이시스트 제이슨 뉴스테드가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