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e Beatles (1967)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 2017년에 리마스터링 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이하 ‘페퍼 상사’)를 들어보자. 보컬과 킥/스네어가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좌우를 넓게 쓴 정석적이고 편안한 믹스. 비틀즈의 음악이 이토록 위화감 없이 들리다니 어떤 의미론 격세지감이고 한편으론 시원섭섭하기도 해.
내가 처음 접한 비틀즈 앨범은 컴필레이션 앨범 《1962-1966》(속칭 ‘레드 앨범’)이었어. 어느 날 사촌형이 들어보라며 선뜻 내게 주고 간 빨갛고 두꺼운 CD 케이스. 그러나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앨범을 듣지 않았지. 메탈과 얼터널티브에 듬뿍 절여진 중2병 강성 락돌이였던 나에게 비틀즈의 음악은 뭔가 허전하고 심심했던 거야. 다른 무엇보다 거슬렸던 점은 몇몇 트랙에서 들리는 그 이상한 패닝이었어. 보컬이 극단적으로 오른쪽 이어폰에서만 나온다거나, 드럼 소리가 왼쪽 이어폰에서만 나와야 할 이유가 대체 뭘까? 듣는 중에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온전히 음악에 집중하기 힘들었어. 무려 비틀즈의 음반이니까 ‘무슨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나는 그 어색함을 핑계로 ‘레드 앨범'의 비틀즈와 잠시간 거리를 두었지.
그 뒤 몇 년 동안 나는 록 음악에 관련된 여러 서적과 기사를 탐독했고 자연스레 비틀즈에 대한 찬양의 글월들도 여럿 접했어. 사람이란 참 간사해. 그런 글을 계속 읽고 나니 안 듣던 비틀즈를 다시 찾게 되더라.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보다는 그나마 음악 듣는 귀가 생겨서일까? 묵혀둔 《1962-1966》을 들으며 나는 비틀즈의 위대함에 고개 숙였어. 들어도 들어도 감탄이었고 들을 때마다 겸손해졌지. 그간 못 알아본 죄를 부끄러워하며 비틀즈에 탐닉할 무렵, 신경 쓰이는 음반이 하나 생겼어. ‘최고의 록 음반 1위'라던가 ‘록 역사상 가장 중요한 앨범'이라던가 하는 화려한 수식이 뒤따르던 그 음반은 바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였어. 사이케델릭이 어쩌니 히피가 어쩌니 하는 이야기들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 되어 내 마음을 간지럽혔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페퍼 상사’를 처음 들었던 밤을 기억해. 연필 소리와 풀벌레소리 가득한 어느 야자 시간, 공부는 뒷전에 두고 음악만 들었어. 수미상관의 머리와 꼬리를 완성하는 타이틀곡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로 시작하여, LSD의 약자를 이루게 제목을 지었다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폴 매카트니의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라 할 만한 〈She’s leaving home〉. 조지 해리슨의 테이스트가 짙은 〈Within You Without You〉. 대미를 장식하는 〈A Day in the Life〉까지. 콘셉트 앨범이라는 콘셉트를 제대로 보여준 구성력도 대단했고, 각각의 곡이 불러일으키는 심상 또한 훌륭했지.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었어. 이 앨범에서조차 보컬이 한 편에서만 나온다던가 관중의 환호 소리가 왼쪽 채널에서만 나오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으니까. 이런 식의 밸런스는 역시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비틀즈를 맹신하게 된 나에게 있어 하드패닝은 더 이상의 큰 문제가 아니었지.
내가 비틀즈의 패닝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야. 절친한 뮤지션 강백수의 〈꿈이었나〉란 곡의 믹스를 작업한 것이 계기가 되었어. ‘존 레논 혹은 비틀즈의 사운드를 참고해 달라'는 강백수의 메일을 읽자마자, 이번 믹스에 슬랩백 딜레이와 하드 패닝을 써봐야겠다는 계산이 섰지.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작업이었어. 차분히 악기 톤들을 다듬고, 그 옛날 Abbey Road 스튜디오에서 썼다는 콘솔과 아웃보드를 재현한 디지털 플러그인까지 띄우고 나니 괜히 우쭐한 기분마저 들었지. 슬랩백 딜레이도 늘 자주 쓰는 효과였어서 이번 믹스도 큰 어려움 없이 끝나는가 싶었어.
문제는 하드 패닝이었지.
노브를 돌릴 수가 없었어. 아무 생각 없이 드럼을 오른쪽 끝으로 보내거나 보컬을 왼쪽 끝으로 던져버리면 되는 것인데도, 팬팟(Panpot)을 100까지 돌리기가 영 꺼림칙했어. 그럴 만도 해. 여태 나는 보컬이나 드럼에 그 정도로 치우친 패닝을 해본 일이 없었던 거야! 밥벌이로 녹음과 믹스를 하며 밥 먹듯 만져온 그 팬 팟이, 마음가짐 하나로 인해 천근만근이 되었어. 신기한 마음의 조화였지.
난항을 겪던 그때, 문득 나는 ‘페퍼 상사’를 작업할 당시 비틀즈와 조지 마틴 앞에 놓였을 상황을 어렴풋이 상상해 보았어. 세계 최초의 4트랙 녹음기로 한 겹 한 겹 음질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히 소리를 쌓아 올렸을 그들의 모습을 말이야. 무인지경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들 앞에서 그들은 어떻게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그리도 쉬운 일이었을까? 조지 마틴과 비틀즈는 3주의 시간을 들여 모노 믹스를 만들고서는 3일 만에 스테레오 믹스를 해치웠다던데, (물론 당시엔 모노 믹스가 더 중했다지만) 그마저도 존경스러웠어. 그들의 일화를 곱씹으며 내 안에 남은 작디작은 대범함과 과감함을 모아 모아 간신히 〈꿈이었나〉의 믹스를 마쳤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비틀즈의 그 과격한 스테레오 믹스를 찾아 듣기 어려워지고 있어. 모노 믹스만이 비틀즈의 진의가 담긴 유일한 음원이라느니, 리마스터링을 통해 비틀즈의 음악을 디지털 풍화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돌아다녀. 하지만 그 누구도 조지 마틴의 스테레오 믹스를 그리워하지 않는 듯해. 3일 만에 뚝딱 넘긴 그 '이상한' 스테레오 믹스가, CD의 시대를 지내온 많은 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비틀즈 음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요즘엔 되려. 비틀즈의 하드 패닝이 일종의 ‘척결 대상’처럼 여겨지고 있어. 옛 믹스 타도의 선봉에 조지 마틴의 아들 자일스 마틴이 서 있다는 것도 큰 아이러니야. ‘페퍼 상사’ 역시 그의 마수(?)에 걸려 리믹스되었고, 나로서는 매우 애석하게도 자연스럽고 평범한 믹스가 되어버렸어.
언젠가 이 이상한 스테레오 믹스를 오직 CD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그런 디스토피아가 올지도 몰라. 그날이 오면 비틀즈의 새로운 박스 세트가 발매되겠지. 거기에 항의하는 길은 ‘페퍼 상사’를 비롯한 비틀즈의 CD들을 잘 간수하는 것 뿐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
여느 명반들이 다 그렇지만, ‘페퍼 상사’의 판본들은 그 중에서도 꽤나 어지러운 편이다. 1967년에 최초의 앨범이 발매되었고, 1987년에는 디지털로 리마스터링 된 CD가 나왔다. 2009 년에는 비틀즈의 모든 음반을 원본인 모노로 재구성한 《The Beatles in Mono》의 일부로도 수록되었다. 2017년에는 앨범 발매 50주년을 기념하여 전면적으로 믹스를 수정한 ‘Deluxe Edition’도 발매되었으니 내가 알고 있는 정식 발매반만 4개이다.
마지막 곡인 〈A Day in the Life〉가 끝난 후, 보너스 트랙 느낌의 재미있는 소리가 들어있다. LP판에서는 이 부분이 물리적으로 무한 재생되도록 처리되어 있는데, CD판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한 기믹이라 페이드 아웃 처리되었다.
Release Date May 26, 1967
Recording Date December 6, 1966 - April 21, 1967
Recording Location EMI and Regent Sound,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