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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May 10. 2024

Random Access Memories

by Daft Punk (2013)


 CD를 모으다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모아야 할 앨범이 너무나도 많다고. 도대체 이 세상에는 명반이라 불리는 앨범들이 왜 이리도 많은 것인가. Must Have 혹은 Essential이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음반들이 왜 이렇게 흔한 것인가. 내가 아무리 돈을 모아도 저 강남의 브랜드 아파트를 살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아무리 CD를 모아도 음반 가게 진열장에는 항상 내게 없는 음반들이 꽂혀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치다. 토마스 에디슨이 1877년 최초의 음반을 만든 약 150년 전부터, 매분 매초 셀 수 없이 많은 음반들이 세상에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중 몇은 수작이 되고 그중에 또 적지 않은 수가 명반이 되니, 이 세상이 명반으로 가득 찰 수밖에. 당장 본 연재부터가 ‘내가 명반을 모으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고, 이 이야기들로만 어느 정도 분량을 꾸역꾸역 채우고 있는 것이 그런 세계에 대한 반증이다.


 음반을 모으는 입장에서 ‘모아야 할 것이 무수히 많다'는 전제는 즐거우면서 동시에 고통스럽다. ‘또 살 것이 남았다'라는 사실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임을 알아차린 후에는 더욱이 그렇다. 아무리 모아도 다 모을 수 없다면 도대체 나는 이걸 왜 모으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목표로 모을 것인가?

 하지만 섣부른 실망은 금물이다. 그런 허무와 탄식의 세월을 허송한 뒤에라야, ‘중요한 음반'과의 만남이 더욱 감격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명반은 많지만 진정 ‘중요하다'라고 할 만한 앨범은 드물다. 그렇다면 그 ‘중요함'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형식적/심미적 차원에서 당대 뮤지션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거두거나, 혹은 역사적/시대적 맥락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앨범이라야 비로소 ‘중요한'이라는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전자의 예로는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s> 같은 앨범이, 후자의 예로는 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과 같은 음반이 떠오른다. 요컨대 내적으로 뛰어나거나 외적으로 특출 나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 비춰볼 때, Daft Punk의 <Random Access Memories>는 본 연재에서 다룬 앨범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음반일지도 모른다. 앨범 내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유려한 완성도를, 앨범 외적으로는 대중음악 그 자체를 바꾸어버린 파괴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완성도와 영향력 면에서 2010년대 이후로 이보다 더 중요한 앨범은 전무해 보인다.

 어디 그뿐이랴. 곰곰 돌이켜보면 Daft Punk의 음악은 1집 <Homework>부터 비범하기 그지없었다. 배경은 레이브의 광란이 휩싸인 90년대 중후반의 유럽. <Homework>는 150을 넘고 160을 넘어 끝도 없이 빨라지고 단순해져 가던 댄스음악의 bpm을 단숨에 120 전후로 끌어내렸다. 춤을 잊은 일렉트로닉 뮤직 씬에 ‘How to Dance'의 경종을 울렸다. 그 설법에 많은 이들이 감화되어 프렌치 하우스라는 장르가 탄생했고, 그러는 사이 Daft Punk는 한 장르의 사조로서 우뚝 섰다.

 2001년에 발매해 전 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2집 <Discovery>에 대한 언급도 빼놓아선 안될 것이다. 그룹을 대표하는 명곡들이 대거포진한 이 앨범을 통해 Daft Punk는 비로소 일렉트로닉 뮤직 씬의 기린아를 졸업하고 팝 스타의 지위를 획득했다. 이후 그들은 3집 <Human After All>과 라이브 앨범 <Alive 2007>을 냈고, 영화 트론의 OST 작업도 했다. 그들 다운 좋은 앨범들이었지만, '중요'하지는 않았다.


 별생각 없이 바쁘게 지내던 2013년, Daft Punk를 둘러싼 희안한 소문이 돌았다. Daft Punk의 새 음반은 디스코 음반이며, 호화로운 세션 연주자들과 함께 샘플링을 배제한 채 ‘진짜로 녹음’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아니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의 대명사 Daft Punk가 전자 음악을 내던진 것인가?

 앨범이 나온 직후, <Get Lucky>를 처음 들었던 것은 선배들과 외근을 가던 차 안의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설마설마했지만 그것은 과연 디스코 음악이었다. 어디선가 들은 듯 안정적으로 치고 빠지는 기타 쨉쨉이와 덩실거리는 베이스, 그리고 무려 보컬까지(!). 이게 Daft Punk 신보라니 대관절 무슨 일인가 싶었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말이 되는’ 음악이었다. 애당초 Daft Punk의 음악 그리고 프렌치 하우스라는 장르가 뿌리로 삼는 음악, 가장 많이 샘플링하는 음악이 7080의 디스코, 훵크 뮤직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Get Lucky>가 들려주는 사운드는 단순한 원점회귀가 아니었다. 껍데기는 달라도 늘 듣던 Daft Punk 음악의 요체가 그대로 실려 있었다. 워낙 자연스러워서 첫 번에 듣지 못하였을 뿐 Daft Punk 하면 떠오르는 샘플러, 보코더 같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곡의 구조와 짜임새, 완성도도 늘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로 그 완성도였던 듯하여 놀라우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외근을 마치고 스튜디오로 돌아온 우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스피커 앞에 모여 <Random Access Memories>를 복기했다. 첫 곡의 제목은 <Give Life Back to Music>이었다. 음악에게 생명을 돌려주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했는데 인트로부터 거대하고 두꺼운 덩어리들이 스피커 밖으로 떵떵 튀어나왔다. 스튜디오에 자리한 우리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순간에 나는 아주 넓은 공간을 연상했다. 앞뒤 양옆 위아래 심지어 스피커 바깥까지 펼쳐진 탁 트인 부스가 보이는 듯했다. 그토록 넓은 공간에서 흥겨운 리듬이 울려퍼졌다. 함께 음악을 듣던 상기된 얼굴의 작곡가 형님은 하이햇을 좀 들어보라며 소리쳤다. 그 말을 따라 집중하고선 하이햇 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약간 오른쪽에 찰랑찰랑 들락날락하는 하이햇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하이햇을 기준 삼아 머릿속으로 드럼의 배치를 재현하고, 베이스와 기타, 보컬과 그 외 모든 악기의 위치를 찾아보았다. 리듬을 이루는 모든 악기들이 섬세하게 조정되어 있었고, 다이나믹이면 다이나믹. 음색이면 음색 모든 요소가 살아 있었다. 아, <Give Life Back to Music>!


 2010년대 초, 그 무렵 발매되는 음악들은 매체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있는 힘껏 볼륨을 올리는 경쟁. 이른바 ‘라우드니스 워’의 포화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어떤 이유로든 볼륨을 올리는 것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음악이 갖는 고유의 다이나믹도 기꺼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라우드니스 워가 가장 격렬했던 2000년대부터 2010년대의 음악을 듣다보면 ‘어딘지 납작하고 답답하다’라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했던 그 때의 우리가 만든 음악도 그랬고, Daft Punk의 옛 음반들도 마찬가지였다. 음악이 그렇게 생긴 게 당연하고, 그렇게 생긴 음악에 너무도 익숙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Random Access Memories>를 함께 들으며, 우리가 사랑하고 공부했던 음악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듣는 내내 충만했고, 한 것 없이 행복했다. 그렇게 느낀 것은 비단 우리만이 아니던 것 같다. 전 세계가 Daft Punk의 음악에서 어떤 것을 찾은 것일까? 2015년 즈음부터는 정말로 뭔가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업계 사람들이 라우드니스의 측정 기준을 신경 쓰기 시작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용어들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하고, 애플뮤직과 스포티파이도 연이어 상륙했다. 우리를 둘러싼 미디어 감상 환경이 10년 새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우리 곁에서 그 옛날처럼 대책 없이 짜부라진 음악들이 자취를 감췄다. 이제 라우드니스 워는 거의 종식됐다 봐도 무방할 정도다. 좋은 사운드가 돌아왔고 오늘도 훌륭한 음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Daft Punk와 <Random Access Memories>에게 그 공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답하고 싶다. 이 앨범은 우리 모두에게 음악을 돌려준 앨범이라고, 여기 이 글의 말미에 그 의미를 적어둔다.


     한참 나중에 잡지를 보고 안 사실이지만, 당시 Daft Punk는 그냥 녹음도 아니고 아날로그 테잎 레코딩을 했다 전한다. 믹싱을 할 때에도 de-esser를 제외하고는 모조리 아날로그 아웃보드를 사용했었다 기사를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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