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세우스의 배
2005년반 《don’t believe the truth》를 들으며 테세우스의 배를 생각해.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귀환한 영웅 테세우스의 배. 배의 판자들이 썩을 때마다 한 조각씩 새 판자로 갈았다면, 본래 배를 이루던 판자가 한조각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이 배를 과연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
영광의 2집《(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시절부터 함께한 앨런 화이트마저 내보내고, 원년 멤버는 갤러거 형제만 남아버린 상황. 그 오아시스를 과연 1집《Definitely Maybe》의 오아시스와 같은 밴드라고 볼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대답을 얻고자 나는《don’t believe the truth》의 발매를 손꼽아 기다렸던 것 같아.
그 무렵 세간에서는 말했어. 오아시스 음악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고. 혹자는 오아시스 비틀즈를 비롯한 과거의 록 밴드의 영향력에 갇혀있다거나, 매번 같은 음악을 반복할 뿐이라 주장했지. 반쯤은 맞는 말 같지만, 그래도 오아시스는 느린 걸음이나마 조금씩 바뀌어 왔어. 한 짝 한 짝 판자를 갈아 끼운 테세우스의 배처럼, 매 앨범 오아시스는 그들의 음악(과 멤버 구성)에 변화를 꾀했지. 그러는 사이 오아시스의 음악은 비틀즈와도, 롤링 스톤즈와도, 블러와도, 1집의 오아시스와도 분명히 달라졌어. 오아시스를 이루던 본래의 판자가 남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발매된 앨범이 바로 6집 《don’t believe the truth》였고, 이 새로운 테세우스의 배는 꽤나 멋진 음반으로 완성이 되었지.
오아시스의 음악을 늘 좋아하던 편이었지만, 《don’t believe the truth》가 유독 내게 좋게 들렸던 것은, 오아시스라는 밴드를 유지시키던 ‘응력’의 변화가 느껴졌기 때문이야. 기실, 1집에서부터 3집까지 오아시스의 모든 곡들은 노엘 갤러거 혼자서 작곡한 것이고, 4집과 5집에서도 대부분의 곡들을 노엘 갤러거가 담당했거든. 무대에서는 리암 갤러거가 주인공이었고. 밴드를 둘러싼 온갖 구설수와 사고, 싸움도 이 형제들이 만들어냈어. 그러니까 5집 이전의 오아시스에는 ‘밴드’라는 느낌이 부족했단거지.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보기에 오아시스는 갤러거 형제와 세션들로 이루어진 그룹이었고, 그로 인해 나는 오아시스를 포스트 비틀즈로 여기는 시선에 공감하지 못했어. 왜냐하면 오아시스란 밴드를 뭉치게 하는 응력은 비틀즈가 보여준 멤버 전원의 시너지와는 백만광년 동떨어진 것이었으니까.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전면에 나서는 가운데, 조지 해리슨이 간간히 중요한 곡들을 히트시키며 링고 스타가 밴드 전체를 화합하는 밸런스를 이룬 비틀즈. 노엘 갤러거의 독재 아래 늘 눌려있던 리암 갤러거와 깍두기들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니?
그에 반해《don’t believe the truth》는 어땠냐 하면, 무려 1번 트랙부터 베이스를 치는 앤디 벨의 곡으로 시작해. 앨범 통틀어 리암 갤러거가 2곡 반, 기타리스트 겜 아처가 1곡 반, 앤디 벨이 2곡을 만들어 노엘의 곡은 수록곡의 절반 이하였어. 오아시스로서는 전례 없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이러한 도박(?)은 성공을 거두어, 밴드는 늘 2집《(What's the Story) Morning Glory?》과 비교되던 기나긴 3의 징크스를 털어내고 현세대 밴드로 재림하게 되지. 앨범의 정의를 ‘노래모음'으로 본다면,《don’t believe the truth》는 진정한 오아시스의 ‘앨범'이라 할만했고, 새로운 부품들로 멋지게 무장한 테세우스의 배, 제2의 오아시스의 출항을 알리는 명반이었어.
그로부터 2년 뒤인 2008년에는 7집 《DIG OUT YOUR SOUL》이 발매되었어. 이 앨범에서는 노엘 갤러거의 비중이 다시금 커졌지만, 앤디 벨과 겜 아처가 각각 1곡씩, 리암 갤러거는 3곡이나 작곡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지. 6집과는 또 결이 다른 사이케델릭 한 색감의 앨범에 평단과 대중은 열광했고, 《DIG OUT YOUR SOUL》에 6집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이라는 평을 내렸어. 리암 갤러거가 쓴 〈I'm Outta Time〉이 특히 놀라웠는데, 가히 오아시스 최고의 곡 중 하나로 꼽을만하지. 그렇게 6집에 이어 7집까지 연착륙시킨 오아시스에게 르네상스가 찾아오나 싶었어.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지만, 밴드는 해체로 향하는 집단이야. 밴드가 흩어지려는 그 힘을 넘어서는 강한 응력이 있어야 밴드가 유지될 수 있는 법이지. 노엘 갤러거가 ‘우린 X나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라고 인터뷰하긴 했으나, 적어도 6집 이전까지의 오아시스는 갤러거 형제의 응력으로 뭉쳐있던 밴드였어. 그러던 것이 노엘의 작곡 지분을 내려놓고 앨범의 수록곡을 멤버들에게 고루 분배한 지 단 두 앨범(단 몇 년) 만에 밴드가 파국을 맞이하더라. 나는 이걸 우연이라고 보지 않아. 리더의 카리스마를 중심으로 뭉친 독재 체제에서, 각자의 재능을 발휘하는 민주적 체제로의 전환이 일어나자마자 형제는 헤어졌고, 오아시스의 시계는 멈춰버렸지. 흩어진 이들은 비디아이니 하이 플라잉 버즈니 라이드니 하며 따로 활동을 했지만, 거기엔 역시 오아시스가 없었어.
그러던 얼마 전, 오아시스가 재결합한다는 뉴스가 들려왔어. 형제는 돈 때문이든 뭣때문이든 화해를 한 것 같고, 앤디 벨의 합류는 불확실하지만, 원년 멤버 본헤드의 귀환 루머도 돌고 있고 분위기는 무르익은 것 같다.
모든 판자가 바뀐 테세우스의 배가 테세우스의 배로 불릴 수 있을까? 부를 수 있다면 그건 테세우스의 이름값, 미노타우로스를 죽였다는 영웅적 행보 덕분이겠지. 오아시스를 언제나 오아시스로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밴드에 갤러거 형제가 있기 때문이고, 《don’t believe the truth》 같은 끝내주는 앨범도 있었기 때문이일거야.
앨범 발매 당시 노엘 갤러거는 NME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다고 말하지만, 저는 이 앨범이 좋은 노래 모음이라고 생각합니다.” / “리암의 곡들은 훌륭하고, 앤디의 곡들은 빛났고, 겜의 곡들은 정말로 ‘'Revolver’에 가장 가까웠습니다.”라고 평하는 한편, “리암은 빌어먹을 영구적인 생리 주기를 겪는 여자와 같았다.”고 덧붙였다.
재미있게도, 《don’t believe the truth》에서 ‘오아시스다운' 곡 2곡〈Turn Up The Sun〉과 〈Keep The Dream Alive〉이 모두 앤디 벨의 곡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Recording Location Capitol studios, Los Angeles, CA / Metropolis Studios, England / Olympic Studios, London, England / Strangeways Studios, London, England / The Village, Los Angeles, CA / Wheeler End Studios, England
Release Date May 31, 2005
Duration 4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