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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Oct 18. 2024

Blood Sugar Sex Magik

by Red Hot Chili Peppers (1991)

데드 엔드 (Dead End)


 스튜디오 녹음을 경험해봤다면 진공과도 같은 부스의 적막함을 알고 있을 거야. 조명이라도 끄고나면 흡사 작은 우주나 다름 없지. 나는 지금껏 수많은 비행사들을 그 우주로 들여보내며, 때때로 자주 우주유영의 이미지를 떠올렸어. 죽은 공간 속에서 홀로 살아 떨리는 외로운 움직임. 머리에 쓴 헤드폰 하나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읊조리는 그들을 향해, 나는 연신 녹음 버튼을 눌러댈 뿐이었지.


 잔향이 적은 공간의 특성을 실제로도 흔히 ‘데드(Dead)하다'라고 표현해. 공간감은 곧 잔향감인데, 잔향이 없는 공간은 개성이 없는 공간이고, 개성이 없다는 것은 곧 죽은 공간이라는 비유. 데드한 조용함은 관 속의 조용함과 진배없단 거지.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서있는 것 만으로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아. 사운드 측면에서도 재미가 없어. 밋밋하고 건조한 소리는 특별할 것 없이 그저 안전할 뿐이야.

 때문에 예로부터 데드한 벽면(Dead End)과 살아있는 벽면(Live End)의 조화가 좋은 스튜디오의 조건으로 꼽혔지만, 방음부터 쉽지 않은 한국의 도심 환경 상, 안전한 프로덕션을 우선으로하는 한국인의 특성 상, 대부분의 녹음 공간은 잔향을 없애는 쪽으로 만들어져 왔지.


 그간 내가 일한 스튜디오들의 부스들도 모두 데드 일색이었어. 그러한 부스에 연주자 / 보컬 / 성우들을 가둬놓고, 매번 그들이 말라가는 것을 지켜봤지. 나에게 스튜디오란 늘 누군가의 생기를 빨아내는 곳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받아낸 잔향 없는 소리에서, 소위 ‘깨끗하다’던 그 소스에서, 기껏 뽑아낸 생기를 느낀 적은 거의 없었지. 연주를 위한 녹음인지 녹음을 위한 연주인지. 두꺼운 흡음재와 본드 냄새 속에서 ‘이게 맞나?’ 몇 번씩 홀로 되뇌었어.


 그러다 보게 된 다큐멘터리가 《Funky Monks》야. Red Hot Chili Peppers(이하 RHCP)의 명반《Blood Sugar Sex Magik》의 녹음 과정을 담은 지리한 흑백 영화였는데, 커다란 저택에서 녹음과 기행을 반복하는 RHCP의 모습을 보여주는게 내용의 전부였어. 하지만 동시에 프로듀서 릭 루빈과 엔지니어 브렌던 오브라이언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영상이기도 했지. 앨범 녹음을 위해 고택에 모인 그들은, 음침한 집에서 숙식을 하며 넓은 거실, 좁은 화장실 가리지 않고, 자다가도 깨다가도 녹음을 이어갔어. 감도가 좋은 콘덴서 마이크가 아닌 다이나믹 마이크로 메인 보컬을 따버리는 건 예사였고 타일이 가득찬 잔향 덩어리 방에 드럼을 놓거나, 바깥 소리가 들어오건 말건 야외에서 녹음을 해버리는 그 모습은  스튜디오의 ‘데드'함에 익숙했던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지. 공간의 특성을 죽이기는커녕, 벽과 천장의 반사를 최대한도로 이용하더라고.

 귀신이 나왔더라는 그 저택(The Mansion)에서, 밴드는 죽음과 가까워지기는 커녕 생기를 얻어가며 녹음했어. 그게 가능한 일인가? 이렇게도 되는 일이었나? 지금도 나는〈Give It Away〉를 들을 때마다 이 곡을 드럼을 단 네개의 마이크로 녹음했다는 사실. 리버브는 EMT259플레이트 리버브 단 한개만 사용했다는 사실에 전율하고 또 전율해.

《Blood Sugar Sex Magik》에서는 ‘합주’의 생동감이 들려. 그 생동함 속에는 여전히 날 것인 아이디어들이 꿈틀거린지. 〈Breaking The Girl〉후반부의 웅장한 타악이나, 거꾸로 재생해서 오버덥한〈Give It Away〉의 기타솔로, 두번 녹음해서 좌우로 벌린 〈The Power of Equality〉의 드럼 등. 대부분 치밀한 프로덕션이었다기보단, 즉흥적인 결단의 결과였으리라 생각해.


“언젠가 시골에 녹음실을 차릴거야.”


 언제부터인가 나의 입버릇이야. 콘크리트 숲을 떠나 진짜 숲에다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다. 고즈넉한 산채의 한 방을 부스로 써서 새소리 풀벌레소리도 받아들이고 싶다.  맨들맨들해진 대청 마루에 밴드를 불러 합주를 시키고, 온돌방을 컨트롤룸 삼아 그 연주를 녹음하고 싶다. 연주가 끝나면 앞마당에서 야채를 뜯어 함께 나눠먹고 싶다. 이런 청사진을 그린 지 오래되었어. 언제쯤 떠날 수 있을까? 예전에도 지금도 시간과 공간에 쫓기는 녹음만을 하고 있는데. 현실은 고되지만 언젠가만을 바라며 현실을 살아낼 수 밖에.


 이 글을 쓰다 ‘그들이 합주하게 두고 마법이 일어나길 바라며’ 녹음을 받았다는 브렌던 오브라이언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어. 그에게 크나큰 존경과 그보다 큰 질투를 함께 보낸다. 부럽다. 부러워.


    《Blood Sugar Sex Magik》은 The Mansion에서의 첫 앨범 녹음이었으며, 이후 Guns N' Roses, Jay-Z, System of a Down, Linkin Park, Dua Lipa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The Mansion을 다녀갔다.  

    앨범 커버의 멤버 얼굴은 그림이 아니라 사진을 가공한 것이다.  

    《Funky Monks》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노라면 채드 스미스만이 정상인처럼 행동한다. 이는《Blood Sugar Sex Magik》녹음 기간 중 다른 모든 멤버들이 The Mansion 에서 숙식을 하는 가운데 드러머 채드 스미스만이 출퇴근 녹음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Recording Location    The Mansion (Los Angeles)

Recorded Date    April – June 1991

Release Date    September 24, 1991

Duration    01: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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