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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Oct 24. 2024

IMAGES AND WORDS: 프로그레시브한 정신

by Dream Theater (1992)

프로그레시브한 정신


 처음 Images and Words를 플레이 했을 때 뭔가 잘못된 줄 알았어. 라디오에서 들었을 땐 자연스러운 페이드 아웃으로 끝나는 곡이었는데, CD로 들으니 마지막에 갑자기 뚝 끊기듯 끝난더라고. 환불을 받아야하나까지 고민하다 조금더 찾아보니 원래부터 그런 곡이었더라. 보통 이런 식으로 고조되면서 빌드업되는 곡들은 볼륨을 줄여가며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주잖아? 그런데 Pull Me Under는 내 눈앞에서 퍽 하고 사라지니 깜짝 놀랐어. 중요한 얘기를 듣다가 갑자기 혼자 남겨진 기. 매우 당황스러웠지. 


 사실 이런 구조는 흔치 않아서, Pull Me Under를 듣고선 딱 떠오르는 곡이 있었어. 바비틀즈의 I Want You (She’s So Heavy)였지. 그 곡도 빌드업에 빌드업으로 사운드의 벽을 형성하다가 갑자기 '뚝' 하고 려버리거든. 잘 듣던 존 레논이 '그냥 거기서 잘라'라고 했다던가? 아무튼 그런 일화가 전해오는 곡이야. 그래도 그 곡은 최소한 Abbey Road앨범의 한쪽 사이드를 마무리하는 위치에 있는 곡이었는데, Pull Me Under는 첫곡이잖아? 전례가 있던 없던, 첫 곡에서부터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밴드는 흔치 않단 말이지. 어찌보면 굉장히 위험한 시도야. 이런 용기야 말로 프로그레시브하다 생각해. 드림시어터는 단순히 테크닉적으로 복잡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밴드가 아니라, 곡 구성과 연출 자체에서도 실험적이고 프로그레시브한 정신을 보여주는 밴드라는 거지. 이들이 그저 빠르고 복잡한 연주만 잘하는 밴드였다면 이렇듯 특이한 마무리로 곡을 끝내지는 못했을 거야.

 보통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고 하면 괴물 같은 테크니션들을 떠올리고, '테크닉'이라고 하면 빠른 손가락이나 복잡한 리프, 고난도의 드럼 필 같은 걸 떠올리기 쉽잖아? 그런데
 드림시어터는 테크닉을 단순한 '보여주기'나 '자랑'이 아니라, 음악을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도구로서 제대로 사용해. 예를 들어, Another Day 같이 단순해 보이는 발라드도, 그 이면엔 수많은 레이어로 쌓은 복잡한 사운드가 토대를 이루어 곡의 풍부한 감정선을 튼튼히 떠받치고 있어. 또 Take the Time 같은 곡도 들어보자. 8분 동안 여러 분위기와 템포를 경파하며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자세히 듣다 보면 이질적인 몇 곡들의 결합같지만, 테크닉이 감정의 여러 결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그 장면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이어지지.기교가 받쳐주니 쉽지 않은 곡의 구성과 진행도 편안하게 들릴 뿐이야. 곡을 단순히 ‘화려하게’ 만드는 테크닉만이 아니라, 감정의 농도를 더 짙게 해주고 곡을 편안히 들리게하는 테크닉인거지.

 
예전엔 이런 기교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었어. 테크닉과 실력이 동의어가 아니지만, 테크닉 없는 실력은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겼었지. 드림시어터 같은 밴드를 많이들 카피하며 연습했던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이었을거야. 하지만 요즘엔 오히려 테크닉을 강조하면 “너무 차갑다”거나 “감정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있는듯 해. 기교를 지나치게 숭상하던 것에 대한 반동, 직관적인 감정 전달에 대한 선호 등등이 원인이겠지. 어째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감정 전달을 방해한다고만 치부하는 것도 같아.

 하지만 Images and Words를 들을 때마다, 고도화된 연주로만 자아낼 수 있는 감동도 있단걸 다시금 깨닫게 돼. 
음반 전체에 율동하는 치밀한 컷과 과감한 반전. 뚜렷한 명암으로 이어지는 이미지와 언어들. 마치 한 편의 영화와 같은 그런 음악을 펼쳐 보이는 '꿈극장'이라니, 밴드 이름 한번 정말 기가막히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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