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필름 #감성 #감성 사진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검은색으로 매끈하게 빠진 삼성 자동 필름 카메라를 들고 수련회를 다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진이 찍혔는지 확인은 하고 싶고 필름실은 열 수가 없어 노심초사하며 사진을 찍고 돌아와 사진관에 가서 인화를 맡기면 일주일쯤 후에 노란 봉투에 사진 한 뭉치를 담아주신 기억이 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아직까지 집안 구석을 뒤지면 오래된 필름 몇 롤이 발견되지 않을까요?
제가 대학에 와서 필름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아날로그 감성이니, 기다림의 매력이니 하는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DSLR 카메라에 담아온 화상 파일은 언제든 증발할 수 있는 디지털 정보에 불과해서 매번 여행을 다녀온 뒤 백업을 하던 과정 중에 회의감을 느꼈고 어릴 때 쓰던 필름을 다시 떠올린 것입니다.
그렇게 종종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 쌓여있던 필름 들을 인화했는데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갔던 줄도 잊고 있던 인도에서의 사진이 찍혀있었습니다. 이런 우연과 기억들이 필름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요? 저도 잊고 있던 그때의 인도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저는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타고 달려 타지마할을 보러 갔습니다. 아마 이것이 이 여행의 유일한 계획이었지요. 10시간이나 연착된 비행기를 타고 새벽 내내 차 안에서 자다가 순백색의 타지마할을 처음 마주했을 땐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시간이 무색하게 너무나 아름다운 흰색이라 사진으로만 봐도 그림 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실로 그 규모가 엄청나 저 흰 대리석 위에 서면 차마 눈에도 다 담기지 않는 무덤입니다. 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의 대칭에 대한 집착은 강박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과 정원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인도에 있는 유적들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유적들 자체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타지마할을 둘러 녹음이 우거진 공원은 한 여름의 인도에서 햇볕을 피하기엔 제격인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사랑을 나누는 연인, 산책을 하는 가족들은 곤히 잠든 아이 같은 평화였습니다.
버터쿠키를 부숴 손 위에 올려두면 다람쥐들이 쪼르르 달려와 올라옵니다. 한 손안에 들어오는 저 조그만 생명이 주는 행복이란.
아 인도는 어딜 가나 호의에는 팁이 따릅니다.(물론 이 점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겠지요.) 그리고 팁은 항상 "As much as you want!"입니다. 처음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지만 적응이 될수록 "네가 행복하면 나도 좋아"라는 말과 함께 저 능글맞은 웃음을 차마 미워할 수는 없게 됩니다. 버터쿠키를 나눠주던 인도인에겐 10루피아 정도 팁으로 줬던 것 같습니다.
타지마할에서 뒤를 돌면 방금 지나쳐 들어온 입구가 있습니다. 밝은 빛의 젬스톤(gem stone)들로 조각된 꽃무늬는 너무 과하지도 않게 들어앉아 있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타지마할을 꼭 닮은 아치들이 정교합니다.
여행지의 낯섦이 주는 효과는 숙소가 있는 곳을 집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매일 밤낮으로 시끄럽고 북적이던 파하르간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곳이 되었습니다. 다른 곳에 있다가도 비가 오면 툭툭을 타고 파하르간지로 돌아와 루프탑 카페에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매일 밤마다 콜라와 사모사를 사러 가던 단골집이 생기고 가끔 소똥인지 개똥인지를 밟기도 했지만 걷는 것이 즐거운 거리였습니다.
비가 오던 날 테라스에서 찍은 매번 막힐 줄 알면서 꾸역꾸역 차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 덕에 생기는 교통체증과 파하르간지 둘째 날 아침 친구가 찍어준 저와 친구의 뒷모습입니다. 첫 번째 사진에 나온 삼거리는 이제 저희끼리 혹은 인도에서 파하르간지에 머물렀던 사람들이라면 "아아 거기~"라며 고개를 끄덕일 곳이네요.
친구가 찍어준 저는 쿠툽 미나르에서도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네요. 하늘에 닿을 듯한 승전탑뿐 아니라 고대 인도의 유적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주는 쿠툽 미나르는 천천히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기 좋은 곳입니다. 세상과 동떨어져 시간여행을 온 듯한 이곳에선 열심히 뛰면서 돌아다닌다면 스스로 인디아나 존스를 찍는 듯한 착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메트로에서 내려 인디아 게이트로 가는 길은 꽤나 길지만 걸을 만한 길입니다. 아직 많이 남았다고 자기 차를 타라고 호객하는 툭툭 기사들껜 양해를 구해도 됩니다. 뒤에는 Rashtrapati Bhavan라는 웅장한 건물이 보이고 양 옆으로 호수와 공원을 끼고 걸으면 종종 원숭이 떼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코끝을 자극하는 군옥수수의 향기도 쉽게 떨치기 힘듭니다. 옥수수에 레몬만 발라 구웠을 뿐인데 굉장히 단맛이 납니다. 인디아 게이트로 가면 비눗방울에 신이나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고 쭈뼛쭈뼛 같이 사진을 찍자고 나타나는 인도 청년들이 있을 수 도 있습니다. 조금의 벽만 허물면 서로의 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여행지를 추천받고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사진을 찍어줄 테니 팁을 달라는 사진가들도 있습니다. 내 카메라가 있으니 괜찮다고 하고 능청스럽게 제 카메라를 들이대자 포즈를 취하기도 합니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지!라고 줄곧 말하고 다니다 결국 여행지까지 와서 손빨래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좀 더 용기가 있었다면 도비왈라를 찾았을까요? 그래도 젖은 셔츠를 말려둔 방안 사진이 뭔가 인도를 여행하는 중이라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라씨 한잔에 20루피'
종종 어디선가 찍었는데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곳도 있습니다. 라즈파트 나가르 쪽이었던 것 같은데 더위를 피하려 들어간 카페입니다. 힌두와 이슬람 문화권이다 보니 소나 돼지고기 요리를 찾기 힘들어 돌아올 때 즈음엔 닭에 질려있었다죠. 그래도 매 끼니마다 힘을 나게 해 준 라씨가 한잔에 20루피입니다.
양 옆의 담은 왜 무너진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또한 대칭일까요? 뉴델리를 마무리한 후마윤의 묘입니다. 대칭을 보니 또다시 타지마할을 떠올리게 되는 수미상관의 여행입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한 모습입니다. 저는 또 누구를 기다리고 있고 무엇이 또 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더위와 비와 싸우며 무척이나 피곤했던 여행이지만 다시 또 보니 마음이 움직입니다.
다시 인도에 갈 수 있을까요? 사실 기회가 된다면 남인도 쪽을 여행해보고 싶습니다. 어느 여행자 분께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인도 사진은 꺼내 볼 수가 없어요, 볼 때마다 다시 가고 싶거든요"
또 다른 장소에서 또 누군가가 제가 오기를 우연히 기다린다면 기꺼이 찾아가야지요. 언젠가 다시 인도를 찾게 될지는 저조차 모르지만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찍힌 이 사진이 마음을 또 동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