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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sser panda Jun 04. 2021

N잡러 이팀장 ㅡ 13

13. 밥그릇 싸움

휴게시간 1시간의 여유와 칼퇴 보장은 우리 회사만의 장점이었다.

급여는 적어도 초과 근무는 그리 많지 않아

퇴근 후 약속도 취소하는 일 없었다는 정도.

자체 회식으로 술 소모임을 가지긴 했지만 그건 내가 술을 즐기기도 했고 업무에 도움될 정보도 얻는 시간이었다.

술 먹는 사람들 사이의 끈끈한 정 같은 것도 생기기도 했고.

개인적 친분은 실수를 감싸주고 사내 정보 입수를 빠르게 할 수단이 된다.

근데 점점 입찰 사건 이후로 회사의 의뢰 건수가 줄어들고

바쁘던 일이 줄어 한가한 시간이 많아졌다.


일이 점점 없어지면 내 책상도 없어진다는 것이었고

일이 많아지면 내 자리는 보전되지만

사람을 더 뽑지 않는다는 건

내 시간과 체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인력 공급과 업무의 수요.

이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관리자이자

리더의 역할인 것이다.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에 말에 의하면 무시무시한 어떤 기업의 정리해고 방식은

책상만 있는 독방에 덩그러니 혼자 놔둔다고 들었다.

그러면 일주일을 못 견디고 나가버린다고 한다.

다른 곳은 새로운 보직으로 발령해 업무를 새로 배우게 하고

또 다른 곳은 해외나 집과 먼 곳으로 발령하기도 한다고 한다.

가지각색 직원에 대한 거리두기 방식이다.

사실상 해고나 마찬가지인 방식으로 법망을 피해 요리조리 처리한다.

누구도 밀려날까 무서워 아무 말 못 하고 대세를 따른다.

이유도 천차만별 밥그릇 싸움에서 밀려나면

놀림거리가 아닌 것 가지고도 놀림거리가 되고

무리에서 따돌림 받고 홀로 남겨진다.

업무는 협업이 필수인데 혼자 남아서 여러 도움을 청하기에는 역부족이니. 뒤이은 수순은 안 봐도 비디오.



집단주의 문화, 한국의 빨리빨리 급한 성격적 특성.

사내 주류를 반대하면 반역자이자 배신자로 찍힌다.

업무성과와도 별개로.

ㅡ 너무 튀어도 달라도 위험해.


노동시장이 으레 그렇듯 인건비 줄여서(일명 인건비 따먹기)

고성과, 고효율을 이뤄내는 것이 보통이다.

야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나비처럼 가볍게 박쥐처럼 기회주의자로 살아야 한다.

어릴 때 동화에서 배웠던 박쥐는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결국 모든 곳에서 버려지고 말던데.

간사한 박쥐처럼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어릴 적 나의 바람이자 지향점 같은 것은 이제 아스라이 없어지고 말 것이었다.


출근길에 감자탕집에서 피우던 냄새는

감자탕 발골에 능수능란하던 사수를 생각나게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감자탕을 자주 사주면서

개인적인 일과 업무 일, 하소연 겸 맘 편히 둘이 점심을 먹곤 했었다.

회사 주변에 갈만한 데가 별로 없기도 하고

그런대로 맛있었던 곳이었다.

감자탕 원가가 식당에서 제일 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깜짝 놀랐지만 맛도 msg의 감칠맛보다

밥은 맘 편한 사이에서 먹는 게 최고니까.

난 감자탕 초짜라 먹고 난 후도 뼈에 살이 그대로 붙어 있는 걸 보며

자기가 감자탕 발골 실력을 보여주겠다며

뼈에 붙은 살은 물론 뼈까지 조각조각 분해하며 열심히 먹던 모습.

호감 있는 사람에게는 어색하고 처음 보는 모습마저 싫지가 않은 법이다.

감자탕을 그리 좋아하진 않았지만 필히 사수가 나에게 비밀을 얘기해주고

신경 써준 것이 기억에 남아 생각나는 음식일 것이다.

지금 점심은 각자 자유롭게 가끔 점심 회식. 올레!

1~2주에 1번 점심 회식에 임원 위주의 싸구려 메뉴 선정과 쩝쩝거리는 부장의 비매너는 견뎌야 한다. 그래도 매일이 아닌 게 다행이라 여길 정도.


하지만 현재 업무적 상황은 사자가 먹고 남은 죽은 고기를 먹는

박쥐나 하이에나가 돼야 한단 말인가.

나는 살아 숨 쉬고 있고 신선하게 살아 있는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 작은 바람이 있는데.

그 간의 사건들 내 몫에 대한 소박한 바람 짓밟

미래가 어두워 보이는 일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간 회의가 끝난 직후 하는 임원 회의.

불투명하고 크기가 다른 줄무늬가 들어간 유리창 안의

회의실에선 대표의 고래고래 지르는 고함 소리가 바깥으로 힘껏 새어 나오며 사내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그래서 결론이 어떻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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