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다. 한 달 넘게 공사를 하더니 얼마 전부터 창가에 사람이 앉아 차를 마신다. 보급형 피자를 판매하던 빨간 간판은 짙은 녹색으로 교체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자주 추억의 오븐 스파게티와 함께 피자를 사 오던 곳이다. 매번 같은 메뉴를 주문한 탓인지, 눈썰미가 좋은 이유인지 종종 농담도 한 마디씩 건네던 사장님은 어느 날 가게 창에 영업 종료 안내문을 써 붙였다. 쉴 새 없이 배달 오토바이가 들락거려 번창하는 가게로만 알았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까닭인지, 아니면 코로나를 이기지 못한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곳으로 넓혀 간 것인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평일 오후 불 꺼진 가게에서 집기들을 한동안 쳐다보던 사장님의 뒷모습만 기억한다.
이십 년 동안 한 동네에 살았어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가게를 찾기는 힘들다. 맛있고 얼굴 익힐 만하면 사라졌다. 지금도 꾸준히 들르는 안과와 치과, 소아과, 동물병원 만이 눈을 감아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천국이라던 김밥집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되었고, 코르크 차지 없이 와인을 사장님과 나눠 마시던 중국집은 미용실이 되었다. 문방구는 편의점으로, 서점은 무한리필 갈빗집이 되었다. 야금야금 산이 깎이고 아파트가 들어설 때마다 가게는 늘어나도 사람 사는 냄새는 사라진다. 오래 살았는데 도시는 더 낯설어진다. 어디 가든 비슷한 세상에서 애써 친밀감을 찾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착오적인지도 모르겠다. 밀려나지 않으려 애쓸수록 멀어지는 삶의 그 복잡한 공식을 언젠가 이해하게 될 날이 올까. 남아 있는 자와 떠나는 자. 밀려나는 자와 사라지는 자. 그 요란한 사연들 속에 오늘은 달빛만 유독 더 밝다.
도시에게 늙어갈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늙어가도록 지켜보지 않고 죽여 버린다. 도시가 언제나 젊지만 항상 아픈 이유다. 단일 수종으로는 지구에 가장 많이 심겼다는 유칼립투스는 다른 나무보다 꽃이 피고 씨를 맺는 시기도 빠른 편이다. 조림의 성과만을 드러내고 싶을 때 자주 이용되는 나무다. 그런 유칼립투스도 처음 꽃이 피고 씨를 맺는 데 5년이 걸린다고 한다. 도시가 항상 성장하는 건물로 빼곡하면 좋을까. 덩치 크고 성과가 눈에 보이는 건물 말고, 남루하고 오래되어도 오래 기억되는 건물이 함께 해야 생명이 숨 쉬는 공간이다. 온통 유칼립투스 같은 건물과 사업을 잔뜩 심어 두고 그마저도 빨리 꽃이 피지 않는 않으면 죽게 내버려 두는 바보 같은 짓을 세상은 반복하고 있다.
새론 들어선 카페는 식물을 함께 판다. 생긴 것도 제각각인 화분에 예쁘게 얼굴을 다듬은 나무들이 오늘은 어디로 팔려가는 것일까. 녹색으로 단장한 새 카페는 나보다 늦게 이곳을 떠나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