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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꺽정 Feb 21. 2023

인생에는 피팅룸이 없지만,

이왕이면 많은 옷을 걸쳐보자



나에게 가장 큰 일상 퀘스트를 하나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옷사기”를 꼽을 것이다. 일단 맘에 드는 옷을 고르기 위해 이 매장, 저 매장 돌아다니면서 옷을 구경하는 것부터가 곤욕이고, 슬렁슬렁보면 맘에 드는 옷을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서 옷걸이 두어 개씩을 넘기며 수박 겉핥기라도 해야 하니까 쇼핑이 곧 노동이 따로 없다.


물론, 그것보다 더 크고 엄청난 장애물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바로 “옷 입어보기”이다. 마음에 드는 옷을 어렵사리 골랐다고 하더라도 그 옷을 탈의실에 가서 나에게 어울리는 옷인지, 어울리지 않는 옷인지 직접 입어보는 행동은 옷이 웬만큼 맘에 드는 게 아니고서야 스스로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겨울이라서 옷을 겹겹이 입고, 외투까지 걸쳤다면? 귀찮음이 옷을 사고 싶은 마음보다 훨씬 훨씬 커져서 공들여 고른 옷을 내려놓기 십상이다. 때로는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면 입어보지 않고 살 때도 물론 있긴 하다. 아무튼 옷사기란 나에게 자기 극복의 과정이자 도전과제에 가까울 만큼 늘 어렵다.



너무 옷을 안 샀나 싶어서 오랜만에 쇼핑을 나간 김에 이 옷 저 옷 뒤적이다가 꽤 마음에 드는 옷을 몇 개 골라서, 그래도 나온 김에 하나 사볼까 큰 결심을 하고 피팅룸 입성까지 해냈다. 그리고, 고생 끝에 입었는데 남의 옷을 주워 입은 양 색깔도, 핏도 어느 것 하나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의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옷을 입은 모습이 너무 웃겨서 어이없는 웃음까지 새어 나왔다.


옷만 봤을 때는 진짜 예뻤는데,

어떻게 나한테는 이렇게 안 어울리지?

주섬주섬 옷을 다시 갈아입으며, 그래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입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들어서 그냥 사버렸다면 집에 가서 입어보고는 실망하고, 귀찮게 교환하거나 환불하기 위해 다시 걸음해야 했을 거고, 그냥 사지 않았다면 나에게 어울렸을 것 같은데 그냥 살걸 그랬나, 하며 집에 가서도 나의 상상 속에서 질척이게 되었을 것이다. 그 상상 속에서 이 옷은 나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을 정도로 찰떡처럼 어울렸겠지.


인생에는 피팅룸도 없고, 체험판도 없지만, 귀찮음을 핑계로 크고 작게 찾아오는 기회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음에 드는 운동이 있으면 한 번 배워보고, 궁금한 취미가 있으면 일단 해보고, 가보고 싶은 식당이 있으면 가보고, 나에게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나랑 잘 안 맞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에게 나를 더 잘 알아가는 배움이자,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배우고 경험하다 보면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기회를 알아보는 안목이 긍정적인 쑥쑥 자라서 더 멋진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리라고 믿는다. 이왕이면 이 인생, 저 인생 조금씩은 걸쳐보자.


쇼핑하면서 인생으로 흘러간 나의 생각의 흐름이란,

어쨌든 다음번에는 다른 색, 다른 디자인의 더 예쁜 옷을 고를 수 있을 테니 나는 괜찮다! 그리고, 그때도 되도록이면 꼭 입어봐야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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