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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주 Nov 20. 2024

사랑이 때로 힘들 때

엄마에 대한 이야기


오늘은 알바 대타를 가는 날인데, 가기 전에 글을 써두고 가려고 한다.

사랑이 때론 힘들 때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하는데 대부분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요즘 엄마와 연락이 안 되는데 나를 차단한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고향인 부산에 내려오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내가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거절하고

최근에는 엄마가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고 카톡을 보내시고 이후로 전화를 안 받는다.


마음이 좀 무겁다. 카톡을 받은 이후로 신경 쓰이고 기분도 안 좋은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많아 지금의 생활에 집중하고 싶고 엄마랑 만나면 좀 피곤하기도 해서 내려가지 않겠다고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룬 건데..

그냥 한 번 내려갔다 올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내려가기 싫었으니까 어쨌든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복잡하다.


오늘 글의 주제가 사랑이 힘들 때에 대한 이유는 내가 평소에는 친구에게도 누구에게도 잘하지 않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해서다.

나는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데 오늘은 그냥 글을 쓰면서 털어 내고 싶기도 하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을 해보려고 한다.




나는 학창 시절에 엄마가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힘들게 일하는 와중에 공부도 잘하지 않는 내가 미웠다고 기억을 떠올리곤 하신다.


나는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퇴근할 때를 기다리곤 했는데 엄마가 돌아오면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많이 피곤하셨는지 바로 옆에 내가 앉아서 엄마를 아무리 부르고 소리를 질러도 나에게 대답을 해주지 않으셨다.


근데 엄마는 언니와는 굉장히 친했다.

언니는 재밌는 사람이고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저녁 먹을 때 재밌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엄마는 항상 즐거워하셨고 엄마와 언니는 고민을 나누는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같아 보였다.

나도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내 자리는 없는 것 같았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나와 엄마는 항상 다퉜고 의견은 잘 맞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툭하면 '또라이'라고 불렀고 내가 하는 모든 말은 궤변이라는 단어로 일축되었다.

엄마와 싸우고 방에 들어가 울던 나에게 엄마가 "울 거면 조용히 울어!"라고 소리 지르던 게 생생하다.

나는 그 뒤로 숨죽여 울기 시작했고 방 밖에선 엄마와 언니가 티비를 보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왜 아빠 이야기는 없는지 궁금할 수도 있는데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빠와 따로 살았다.

아빠가 있어서 나를 감싸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아쉽지만 나에게 아빠는 애초에 없는 사람이었으니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학창 시절에 가장 상처가 되었던 일은 언니가 나와 싸우다가 화가 나서 "엄마가 너를 낳지 말았어야 했다고 울면서 말하더라"라고 했던 기억이다.

언니가 화가 나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조절을 못 했던 것 같고 이후에 언니는 나에게 이 날의 일을 진지하게 사과했고 나는 괜찮다며 화해를 했다.

언니가 이 말을 한 건 감정적으로 격해져 그랬을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엄마가 정말로 나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서 당시에는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엄마를 사랑할 수가 없었고 엄마가 나를 싫어한다는 깊은 믿음이 있었다.




대학교 때도 엄마와 나와의 갈등은 물론 있었다.

엄마가 추천한 학과로 진학했는데 적응을 못하고 전공이 너무 나와 맞지 않아 편입을 하겠다는 나에게 엄마는 '패배자'라고 말씀하셨다.

같이 차를 타고 오던 때 그 말을 들었던 순간의 충격과 아픔까지 모두 어제처럼 기억이 난다.

결국 나는 고집을 부려 편입을 했고 학교를 잘 다니고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첫 회사는 정말 지옥 같았다.

지금 떠올려보니 직속 팀장님의 가스라이팅이 정말 심했던 것 같다.

10개월 정도 다니고 나는 사람들이 나를 욕한다는 망상과 관계사고를 하기 시작했고 매일 회사에 앉아 있으면 정신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머리가 핑 돌고 숨이 막히고 어지러워서 매분 매초 쓰러질 것 같았다.


더 있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퇴사를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

엄마는 나에게 과분한 회사이니 참고 다니라고 사회초년생들은 울면서 힘들어하면서 다니는 거라고 하셨다.

그때의 나는 정신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이러다 죽으면 책임질 수 있냐며 엄마에게 화를 쏟아냈다.

엄마는 그날 저녁 생각을 하시고는 나에게 퇴사를 해도 된다고 말씀을 해주셨고 나는 회사를 정리하고 나오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20대 중반의 사회 경험이 없는 어떻게 보면 어린 상태였기 때문에 엄마의 동의를 구했던 것 같다.

그때는 엄마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30살이 된 지금의 나는 엄마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고 행동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퇴사 후 직종을 바꿔 일을 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일을 했다.

그때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 것은 잘못되었지만 나의 선택에 대해서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이건 좀 웃긴 이야기인데, 내가 외국인 남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그 사람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여태 만나던 사람들 중에선 그래도 잘 만나고 있었다.


엄마에게 어쩌다가 남자친구의 존재를 들키게 되었는데 엄마가 하신 말씀이 충격이었다.

"그런 사람이 왜 너를 만나니. 혹시 한국 비자받고 싶어서 너랑 위장 결혼하려는 거 아니니? 조심해라."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날 역시 너무 황당해서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는 목표나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나름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다 맞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사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근데 나는 연애에는 좀 취약하다.

연애를 많이 해보지도 못했을뿐더러 연애 세포 같은 게 선천적으로 발달이 안 된 것 같이 연인이나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뚝딱거리고 능숙하지 못하다.


엄마에게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설마?'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막 사귀기 시작한 시점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혹시 모른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내 안에 피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그 남자친구와도 금방 헤어지게 되었다.

헤어진 게 엄마의 탓이라고 절대 이야기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받은 많은 상처 중에 이 말이 가장 충격적이고 황당하고 큰 상처인 것 같다.

아마도 연애와 사랑은 나에게 취약점이기 때문에 내가 더 큰 상처를 받은 것 같기도 하다.




내가 20대 중반이 넘어가고 엄마와 함께 놀러 다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엄마는 나에게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너는 모를 거야'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에게 그런 사랑을 제대로 표현해 준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엄마를 증오하고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최근에 엄마와 직접 만나는 것을 피하는 이유는 단지 'toxic relationship'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건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냥 조금의 거리를 두고 엄마의 사랑을 받고 나의 사랑도 주고 싶은 거다.


언니는 결혼을 했기 때문에 엄마의 집착이 덜어졌는데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엄마 손의 바구니 안에 있다.

엄마는 내 모든 스케줄을 확인하고 내가 그 일을 제시간에 했는지 확인 전화를 하신다.

통화 중에 내가 어딘가 산책을 하고 있다고 하면 눈에 보이는 건물을 물어보고 지도의 로드맵으로 그 길을 실시간으로 찾아봤다.

나는 이게 너무 싫어서 엄마에게 약속이 몇 시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않고 얼버무리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게 뭔데 알려주지 않는 거냐며 화를 내셨다.


나는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많이 힘들 때 엄마는 나를 도와주셨고 많이 의지했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엄마가 나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통제적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엄마가 나를 다시 건강할 수 있도록 돌봐주었던 것만큼 나도 엄마와 나와의 관계도 건강할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를 통해 재정립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나를 미워할 수도 외로울 수도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엄마의 딸임과 동시에 한 명의 독립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생활과 이에 대한 분리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 고통이 수반되더라도 이는 꼭 필요한 순간임을 안다.




엄마를 더 제대로 건강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엄마와 내가 함께 있을 때 상처 주지 않고 존중할 수 있다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문제가 없겠지만 많은 시도를 해봐도 그게 잘 안되고 힘들 것 같아서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친한 친구에게도 잘 안 하는 이유는 누워서 침 뱉는 것 같아서였는데, 누워서 침 좀 뱉으면 어떠냐고 생각하고 글을 쓰니 마음이 조금 편하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는 엄청 신경 쓰이지만 엄마도 본인의 생활을 잘 해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마음이 좀 풀리면 전화도 받아주시겠지.

그럼 작은 연말 선물이라도 보내야겠다.


알바 갈 시간이 다 되어가니까, 오늘은 이만 줄인다.

다들 엄마를 미워하지 말고 스스로를 더 사랑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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