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즐겜러로 살자!"라는 말을 떠올리며 지내고 있다.
즐겜러로 살자는 말이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
뭐가 되었든 기왕 할 거 재밌게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는 생각에 주문처럼 스스로 말을 하고 있다.
그냥 게임처럼 일상에 일어나는 작은 사건들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는 생각도 한다.
나에게 그리고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하고 걱정을 하다 보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데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나 무언가 판단할 때 여유를 잃게 되는 것 같다.
쫓기듯이 사는 것도 싫고 타인에게 불친절하고 예민하게 대하고 후회하는 것도 싫다.
죽고 사는 일이 아니면 그냥 편안하게 마음먹고 싶어서 즐겜러로 살기로 했다.
기껏해야 30살을 살았지만 살면서 세상이 나에게만 가혹하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세상이 나를 담금질해서 좋은 일에 쓰려고 하신다며 정신 승리 할 때도 있었고
어떤 힘든 일은 도저히 극복이 되지 않아서 술독에 빠져 살고 엉엉 우는 날도 있었다.
이런 시간을 지나왔기 때문에 조금이지만 초연해질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조급하고 불안하고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만 그냥 모든 일을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하고 싶다.
지금 내가 마음이 편안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회사를 안 다니고 있어서 그런가..ㅋㅋ
최근에 한 군데 2차 면접을 봤는데 느낌이 괜찮아서 조만간 다시 직장을 다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원한 포지션의 직속 팀장님이었고 핀란드 분이었는데 인터뷰 내내 정말 좋은 인상을 받았다.
면접관 분도 나에게 "very positive"한 인터뷰였다고 하셨긴 했는데.. 결과는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회사를 가게 되어도 즐겜러로 살겠다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굳게 다짐하지만 직장인이 되면 상황 속에 매몰되어서 누군가 욕하고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냥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루하루를 잘 살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데 집중하고 싶다.
생각해 보면 내 주위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참 많다.
행복이라는 게 막연한 것 같아서 행복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않은 지가 꽤 되었지만
가끔은 정말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커피를 정말 좋아하는데 주말에 알바를 가면 내가 원하는 종류의 커피를 한 잔 마실 수 있다.
좋은 커피 머신으로 내가 에스프레소를 직접 내려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게 너무 좋다.
알바는 진짜 좀 힘들긴 한데.. 설거지도 많고 청소할 공간도 넓고.. 제빙기도 청소해야 하고..
그래도 맛있는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알바 가기 전에 조금 힘이 난다.
그리고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는데 계획한 진도대로 잘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아침이나 저녁에 만보 이상 걸으려고 하는데 평일에는 꼭 지키고 있어서 그것도 만족스럽다.
걷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는데 마트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도 좋다.
집에서 간단하지만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
노래 듣는 것도 좋고.. 따뜻한 차 마시는 것도 좋고.. 운동 끝나고 씻을 때 기분 좋고..
꽤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엔 행복하면 불안했었다.
이런 과분한 행복을 내가 누려도 되는 걸까, 언젠가 더 큰 불행이 오는 건 아닐까.
막연한 미래가 불안해서 지금의 나에게 행복이라는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근데 뭐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불행하다고 나중에 행복하다는 보장도 없는 거니까.
그냥 즐겜러로 살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직장을 여러 번 그만두게 되었을 때는 나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가족까지 나에게 문제를 찾았으니까.
대학원을 간다고 했을 때도 엄마의 반대가 정말 심했다.
엄마는 내가 공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제빵이나 미용 기술을 배웠으면 하신다.
나는 이제 나를 향한 엄마의 기대를 충족하는 것도 내려놓기로 했다.
엄마는 항상 '딱 이것만 고치면 우리 딸은 완벽할 텐데'라고 하지만
내가 그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즉시 엄마는 나에게 다른 문제점을 찾을 것임을 안다.
나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로 했다.
원하는 공부를 하고 내 하루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채우기로 했다.
나는 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연애를 안 한지는 꽤 됐다.
나는 연애에 좋은 기억이 없다.
나를 죽을 만큼 힘들게 한 사람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연애를 하고자 마음을 열기가 많이 힘들어졌다.
근데 뭐 연애를 꼭 해야 하나?
나는 파트너가 있어야 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다.
대부분의 인생을 연애나 좋아하는 사람 없이 보냈기 때문에 이 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냥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 정도면 충분한 것 같다.
거기서 마음까지 통하면 사귀면 되는 거고 아니면 안 사귀면 되는 거다.
생각이 잘 맞는 사람 만나기도 쉽지 않으니 나는 연애의 시작 단계부터 힘든 인간인 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연애 이야기까지 적고 있는데
서른이 되니까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한다.
그렇게 빨리 결혼할 것 같지 않았던 사람도 갑자기 결혼한다고 하니까 조금 놀랍다.
나는 비혼주의도 아니고 비연애주의도 아닌데 그냥 생각과 마음 맞는 사람이 잘 없다.
타고나기를 이기적인 사람이라 피곤하게 맞춰주는 연애하기도 싫고..
안 맞으면 시간 아까워서 그 시간에 혼자 산책하거나 카페 가거나 책 읽는 게 더 좋다.
이래서 서른이 넘으면 연애하기 힘들다는 거였나. 사실 나는 20대에도 연애를 잘 못했다ㅋㅋ
연애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이유는 연애를 하면 더 즐거운가? 싶어서다.
나는 연애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없어서 공감을 할 수가 없는데 많이들 연애를 하는 걸 보면 연애를 하면 더 즐거운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남들이 그렇다 해도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거니까.. 나는 나대로 사는 거지만.
삶의 방식만큼의 확신이 연애에는 없어서 잘 모르겠다.
쓰다 보니 거의 일기장이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애초에 아무거나 쓰려고 만든 브런치북이라 염치없이 일기장처럼 써도 괜찮겠지.
이런 평화로운 나날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대로 충분한 것 같다.
다음 주엔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서 추울 것 같으니까 건강 관리 잘해야 할 것 같다.
따뜻한 거 마시고 손 시리니까 장갑 끼고 다녀야지.
이상, 즐겜러의 오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