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PD가 갖고 있으면 좋을 것들 ①
드라마 제작 PD는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어떤 자격을 '반드시' 지녀야만 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NO'다.
드라마 제작 PD를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나 자격은 없다.
심지어 학벌이나 전공, 나이, 출신지역, 성별 등등 전부 마찬가지다.
(요새는 현장에 여자 제작 PD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오히려 남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작 PD가 '갖고 있으면 좋을 것들'은 있다.
'필수'가 아닌 '충분' 조건 스킬에 관한 이야기다.
1. 커뮤니케이션 스킬
이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지만, 특히 드라마 '제작 PD'가 갖추면 더욱 좋다.
제작 PD가 결국 다루는 건 '돈'이고, 여러 파트들과 협업해야 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가장 중요하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예전부터 전해져 오는 이 속담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제작 PD는 현장에서 이 속담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이 말을 뼈저리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말 한마디만 잘하면 천냥 빚이 아닌 만 냥 빚을 탕감할 수도 있고,
말 한마디마저 잘 못하면 천냥이 아닌 억 냥의 돈을 허공으로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반드시 화려한 언변을 뜻하진 않는다.
화려하거나 유려한 말솜씨가 아니더라도, 드라마에 있는 무수한 파트들과 유기적인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맥락을 파악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커뮤니케이션 스킬의 핵심이다!
거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때론 들을 줄도 아는 경청의 자세도 필요하다.
말 한마디가 가져오는 현장의 파급력은,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하나가 지구 반대편에 큰 태풍을 불러오는 만큼 어마어마하다.
특히나 제작 PD는 현장과 비현장(?)을 연결하는 오작교로서의 역할을 할 때도 있는데,
이들을 잘 어르고 달래서 유기적으로 일하는 워크 플로우를 관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가장 기본이자 중요하다 할 수 있다.
하루는 현장에 배우들이 타는 소품용 차량들을 지원하는 마케팅 차량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그 당시 동시에 촬영하고 있던 A 드라마와 스케줄이 겹치는 바람에 당장 내일 촬영해야 하는 주인공 차량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물론 그땐 생방송처럼 촬영해야 하는 드라마 촬영 여건이었고,
또 촬영하기로 한 배우의 스케줄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우리 드라마의 스케줄도 밤늦게 갑자기 바뀌었던 터라, 우리 역시도 업체에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긴 했다.
하지만 조연출은 우리가 먼저 촬영을 시작했다는 사실로 마케팅 차량 업체의 연락을 받고 화를 금치 못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선 억울할 만한 일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마케팅 차량 업체에 전화를 걸어서 시간 조율이 정말 안 되겠느냐 재차 물었다.
업체 쪽은 전달받은 콜 시간과 우리가 전달해준 콜 시간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 거리 이동시간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마케팅 차량 업체를 통해 A 드라마의 담당 스탭 연락처를 알아봐 달라 요청했고, 직접 그 스탭과 얘기해서 스케줄 조율이 힘드냐고 연락을 했다. 우리 쪽 스케줄을 조금 조정하는 대신 시간을 좀 미뤄줄 수 없겠냐고 하자, 처음엔 완강히 거절하던 그 A 드라마 쪽도 조금 양보해서 1시간 정도 미뤄보겠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1시간을 벌 수 있었고, 이 같은 사실을 조연출과 감독님께 전달해 배우들과 함께 무사히 촬영하고, 해당 차량을 A 드라마로 보냈었던 기억이 난다.
(마케팅 차량 업체 대표님도 양쪽의 일자리가 끊기지 않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까지 말을 들었다.)
이런 일이 과장 같냐고? 천만에.
현장에 있는 많은 제작 PD들은 전부 공감할 것이다.
2. 엑셀 등 문서작업 스킬
콤퓨우타 작업이 보편화됨에 따라 웬만한 문서는 엑셀 등으로 작업을 많이 한다.
(지난번 말했던 제작일지와 정산 역시 보통 엑셀로 많이 사용한다.)
돈을 관리하는 제작 PD와 엑셀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그건 마치 바늘과 실 같은 존재다.
매월 정산을 할 때 사용하는 것도 보통 엑셀 파일이고,
회사나 프로젝트 내부에서 보고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형식의 파일 작업도 엑셀로 요새는 많이 한다.
특히 엑셀을 하면 좋은 이유는,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것을 그나마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데이터들이 '숫자'다 보니, 숫자를 가장 효율적으로, 최적화 되어 쓸 수 있는 워크 프로그램이 바로 '엑셀'이다.
엑셀의 함수를 이용하면, 가장 기본인 '합계'와 '평균값'을 구하는 것은 물론,
조건에 맞는 조건값을 빨리 찾을 수 있거나 오류를 발견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혹시 아직 MS Office 나 한글문서를 배우는데 서툴다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기능들과 사용법은 익히고 들어오면 좋다.
3. 사교성 x 친화력
요새 MBTI 모르면 간첩 (이제 간첩도 MBTI는 공부하고 올 듯)이라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대한민국은 MBTI 열풍이다. 2000년도 초반엔 처음 사람을 만나면 먼저 물어봤던 것이 '혈액형'이었다면, 이제는 처음 사람을 만나면 MBTI를 먼저 묻는다. 그만큼 사람의 성격을 이해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 아닌 노력을 하고 있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MBTI를 먼저 꺼낸 이유는, 드라마 제작 PD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E' 성향 (외향적)을 가진 사람이 유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으면서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금 험하지만 역동적인 드라마 현장'을 견디기가 조금 더 유리하다. 왜냐면 'I' 성향 (내향적)을 가진 사람은, 현장에서 기가 빨리고 반드시 집에서 충전해야 하는 시간이 'E' 성향을 가진 사람보다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포인트는 E 성향이 아니면 못 한다는 말이 아니라, 유리하다는 것이다. 드라마 제작 PD분들 중에는 I 성향을 가진 채 충분히 해내고 있으며, 잘하고 있는 분들도 꽤 많다. 중요한 것은, 현장에 있는, 그리고 현장에 없는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사람들과 섞여서 일을 할 수 있는 사교성과 친화력이다.
제작부를 제외하고도 현장 사람들 중에서도 I 성향을 가진 사람도 많고, E 성향을 가진 사람도 많다.
또한 E 성향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교성이나 친화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도 아니고,
(오히려 나대는 성격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I 성향이라고 해서 반드시 은둔형이고 비사교적이라는 말도 아닐 것이다.
(조용한 친근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다만 1번에서 언급한 커뮤니케이션 스킬과 더불어 사람들과 함께 협동하며 지내고자 하는,
'사람 친화적인 성격'이라면 기본적으로 드라마 제작 PD 일을 하는 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현장에서 '비글'이라 불린다.
현장을 누비며 이 사람 저 사람 말을 걸며 이것 저것 챙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혼자 있고 싶어하는 ENFP의 성향이 있으니, 현장의 모순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가만 보면 혼자 제일 바쁠 지도..)
② 편에서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