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이자 내 부모의 아들이었다.
나는 2024년 현재 12살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아빠다.
아들 부모들은 알 거다. 아이의 왕성하고 거친 몸놀림에 침대, 소파는 몇 년을 못 버틴다. 그리고 이런 아이의 에너지 발산을 위해 언제나 밖으로 나간다. 엄마아빠 할 것 없이 어제는 축구선수가, 오늘은 검객이 돼 가는 나의 변화무쌍함에 자주 놀란다. 맘껏 에너지 분출 후 웃음을 띄우며 곤히 잠드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볼 때, 아! 오늘하루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하며 맥주 한잔을 기울인다.
우리 가족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캠핑을 즐겼고 캠핑장에서의 나와 아이는 언제나 베프였다. 비오늘날 뛰어다니기, 솔방울 모아 태우기, 개구리한테 모기 잡아 먹이 주기 등 도시아이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이러던 나의 베프는 최근에 점점 사춘기 퍼포먼스를 보이며 나와 멀어지고 있다. 물론 나이 한 살 더 먹으며 소심해지는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저녁 8시 전후로 퇴근하면 아이도 학교와 학원을 거쳐 비슷한 시간에 온다. 아이엄마는 퇴근전이다. 하루일과에서 우리의 눈 마주침의 유일한 시간은 이때다.
"아들! 학교 잘 다녀왔어? 배고프지?"
"어어..."
스킨십 중독자인 나는 꼭 안아주러 다가간다.
아직 도망은 안 간다. 구부정하게 손만 내 어깨에 얹고 방으로 들어간다.
우리의 저녁대화는 끝난 것인가...
2019-20년 코로나가 우리 삶을 가둬놓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는 가장 큰 에너지를 품고 있었으며 아파트 단지밖에도 못 나가는 상황은 아이에겐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답답한 마스크, 투명 아크릴 박스, 상자 같은 아파트 속, 모든 것에 갇혀버렸다. 그나마 아빠와 아들 간의 몸으로 느끼는 교감이자 소통수단이었던 캠핑의 시간마저 사라졌으니 너무나 허탈하고 답답했던 시기였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고 아이와의 중요한 시간이 점점 사라짐에 아쉬웠던 우리 가족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만의 공간을 찾아 나섰다. 현명한 판단과 빠른 실행으로 그 어렵던 코로나 시기를 남과 다른 경험을 쌓아가며 잘 넘겼고 지금까지 나의 5도 2촌 세컨하우스 생활은 진행 중이다.
그때 이후로 여전히 금요일 저녁만 되면 가볍게 짐만 챙겨 세컨하우스로 출발한다. 훌쩍 커진 나의 베프와의 서먹한 관계개선과 나의 쉼을 위한 짧은 여정이다. 어쩌다 엄마가 피곤하거나 주말 일이 있어 같이 못 간다 하면 아이 얼굴에는 음흉한 미소가 번진다.
‘잔소리꾼 제거 임무 완료’
"엄마는 일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우리 없는 집에서 편하게 푹 쉬어"
대견한 아이다. 엄마를 저렇게 사랑하고 진심으로 챙겨주는 아이가 또 있을까??
이런 행운의 날에는 가끔 엄마의 사정권에 벗어난다. 잔소리 없는 자연 속 청청구역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에 빠진다.
우리 집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고 앞뒤옆 어느 곳이든 학원으로 즐비한 서울의 대표 학군지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든 안 하든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는 집 근처의 환경이 아이 나름대로의 답답함이 있을듯하다. 약간의 안쓰러움이 있다.
세컨하우스, 이곳에 오면 사춘기 코스프레 우리 아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성능이 어디까지인지도 몰랐던 스피커를 최대볼륨으로 세팅한다. 빔프로젝트에는 유튜브 댄스강좌 영상이 비치며 화면 속 강사와 일심동체가 돼 간다. 갇혀있던 내면의 모습을 끌어올려 댄스 삼매경에 빠진다.
이곳에서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생성되고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임에 틀림없다. 나는 기회를 틈타 아이와의 간격을 좁혀나가 본다.
이날을 위해 나는 출퇴근시간을 적극활용한다. 아들의 최애 걸그룹 JYP 엔터테인먼트 4세대 걸그룹 NMIXX(엔믹스) 멤버들의 유튜브 숏츠와 가요프로그램의 1위 발표 및 보이는 라디오등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영상과 기사를 습득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나는 멤버들의 나이, 출신지, 데뷔과정, 노래스타일까지 알게 되었고 아이의 엄마는 응원봉을 들고 콘서트를 찾아가는 NMIXX(엔믹스)의 팬클럽 멤버 NSWER(앤써)가 되었다. 엔믹스는 우리 대화의 큰 매개체임에 틀림없다.
“시간은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 의미가 생기지 않으며,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누군가와 같이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결국 우리의 경험과 인식에 따라 그 가치와 의미가 달라진다.
이 말은 단순히 자녀와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시간 동안 자녀가 원하는 활동을 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의 질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모들이 자녀와 시간을 보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각자 휴대폰을 보거나 TV를 시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며 이런 '함께 있는 시간'은 자녀에게는 부모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고 한다.
대신, 자녀가 좋아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좋아하는 게임이나 취미에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함께할 때, 그 시간은 훨씬 더 깊이 있는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가 자신의 세계를 존중하고 이해하려 한다는 것을 느끼며, 그로 인해 부모와의 관계가 더 돈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양'보다는 '질'이 훨씬 중요하다고 설명하며, 함께하는 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문뜩 아들 둘을 키우며 80세를 바라보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난다.(막내인 나는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 나이가 들어도 그냥 아빠 엄마가 편하다.)
지금의 상황에서 아들인 나와 아빠인 나, 그리고 아이의 할아버지인 나의 아빠를 생각하면, 세대마다 서로 다른 경험과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며 관계를 맺어왔을 것이다. 세대 간 시간 보내기와 관계를 얘기하면 흥미로운 관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와 나의 아빠
과거 세대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아빠 세대는 주로 생계나 책임감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고, 자녀와 깊은 소통을 하기보다는 가르침이나 훈육 중심으로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크다. 자녀와의 시간을 "함께 있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시간"으로 여겼을 수 있다. 그 시절에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 자체도 부족했을 수 있지만, 당시의 부모들은 그 나름대로 자녀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와 나의 아들
지금 나의 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방식은 '질 높은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아들이 좋아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이려고 할 것이다.
내가 이곳 세컨하우스에서 서로 교감하며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그 좋은 사례가 될 수도 있겠다. 내가 아이돌그룹에 관한 내용을 아이와 나누고, 함께 영상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춤까지 쳐보는 진심 어린 활동을 한다면 그것이 아이에게는 중요한 기억으로 남을 거라 생각한다. 그 시간을 통해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고, 아빠와 작게나마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나는 나의 아빠가 어린 나에게 시간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그리고 내가 나의 아이에게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성찰해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할아버지 세대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감정적 교감보다는 책임과 의무에 집중했을 수 있지만, 지금의 나는 그 틀에서 벗어나 아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어야 하며, 내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단순히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순간들이 많아질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할아버지가 된 나의 아빠가 아들인 지금의 나와 시간을 보낼 때도 예전과는 달리 감정적 교류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시간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질 수 있다. 내가 아빠와 보냈던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나의 아이에게 더 나은 방식으로 그 시간을 물려주려고 하는 것처럼, 이런 노력들이 다음 세대까지 긍정적으로 전해질 수 있을듯하다.
청소년기 아이를 둔 아빠로서 아이와의 소통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함과 동시에
80세를 향해 가시는 나의 아빠(아이의 할아버지)와의 소통방법도 같이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불행히도 나의 아빠와의 소통시간은 지나온 시간대비 많이 남지 않았다.
30-40여 년 전 혹시 우리 아빠가 나와의 소통을 위해
가요 톱 10의 본방사수를 하시면서 '서태지의 컴백홈' 안무를 추고 계셨던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