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지 말야야 할 나 자신의 존재
5도 2촌, 세컨하우스에 가면 요즘 자주 오는 길냥이들이 있다.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아이들. 까만 녀석은 콩이, 더 까만 녀석은 검콩이, 붉은 갈색의 털을 갖고 있는 녀석은 팥이.. 등 콩과 팥과 호박 등 나름 세컨하우스 컨셉을 적용하여 아이들의 이름을 정했다. 하루하루 지나며 경계를 하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문 앞에서 “밥 주세요~”하며 애교 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가끔은 통통한 엉덩이까지 기꺼이 내준다. 이런 길냥이들과 자연 속에서 느긋하게 소통하는 것은 또 다른 나의 일상이 되었다. 요즘 이 녀석들을 보고 싶어 아이와 함께 사료와 간식을 조금씩 챙겨간다. 마당 한 편에 설치한 해먹에 누워 뒹굴뒹굴 거리며 주변을 살피고 있으면 소리 없이 쓱~다가와 밥만 먹고 유유히 사라진다. 이렇게라도 길냥이들과 잠깐의 시간을 공유하게 되면 나는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동물보호 운동가가 된 느낌이 든다. 챙겨준 밥을 맛나게 먹고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움과 동시에 이 험난한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중이 생기기도 한다.
오늘도 역시나 찾아온 길냥이 ‘콩’. 처음에는 그저 주변에서 흔히 보는 한 마리의 길냥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나에게는 '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주말마다 설렘과 호기심을 주고 나의 일상 속에서 한 곳에 자리 잡아가는 하나의 작은 존재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오늘! 내 뒤통수를 냥냥펀치 연속타를 맞은듯한 일이 생겼다. 아침을 위한 샌드위치를 사러 처음으로 집 앞 카페에 갔고 테라스 구석에 얼굴만 쏙 내놓고 있는 고양이를 보게 되었다.
“사장님네 고양이 인가 봐요?”
“아니에요. 이 시간에 자주 오는 동네 아이인데 이쁘죠? 저러고 있다가 손님 들오시면 애교쟁이가 된다니깐요. “
그러고는 맛난 밥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테라스 구석을 향해 크게 소리친다.
“미미야! “
사장님의 부름으로 구석에서 머리부터 슬로모션으로 녀석이 등장한다.
녀석의 '말린 꼬리와 입과 코로 이어지는 흰색털'을 확인하는 순간 확신했다.
“어 얘 얘는…...... “
“우리 집에 자주 찾아오는 '콩’이에요 “
카페 사장님도 나도 어이없이 웃기만했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우리 집 ‘콩’이는 옆집 카페 주인과 손님들한테 갖은 애교를 부리며 밥도 잘 얻어먹고 사랑도 듬뿍 받고 있는 ‘미미’였던 것이다. 나와 있을 때는 ‘콩’이로, 카페에 있을 때는 ‘미미’로 두 가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만난 길고양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콩이, 검콩이, 팥이 등 이름도 그들의 개성에 맞춰 지었고, 점점 나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묘한 책임감과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등을 보이며 경계를 늦추지 않던 녀석들이 이제는 편하게 밥을 먹는다. 이런 소소한 순간들은 일종의 심리적 안정감과 위안을 준다.
나의 '콩'이와 카페의 '미미'의 모습을 보니 우리의 삶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는듯하다. 오늘의 경험은 단순히 길냥이와의 관계를 넘어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도 연관되어 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직장, 가정, 그리고 사회 속에서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그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우리도 여러 환경 속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소화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시골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궁금한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적응하며 살아가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콩&미미는 그 녀석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직 나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도 나와 상관없이 남들의 시선을 통해 나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억울함은 갖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어쨌든 여러 개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 처지는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만남은 내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는 가끔씩 길을 잃고 헤매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는 법을 배우게 된다.”
길냥이들이 살기 위해 여러 공간을 떠돌며 생존하듯, 나 역시 이 세컨하우스에서 그들과 교감하며 나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느낀다.
‘콩&미미’의 경험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우리는 종종 직장이나 가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살다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곤 한다. 하지만 그들처럼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역할 속에서도 결국 진정한 자신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야마모토 토오루 감독의 일본영화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에서도 길고양이가 주인공에게서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면서도 주인공에게 중요한 감정적 교류를 제공하는 이야기를 다루듯이, 우리의 일상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통해 소통하고 성장하지만, 그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나 자신이 존재한다.
“작고 소중한 생명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삶의 소소한 기쁨과 관계의 소중함”
길고양이들과의 소통은 나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서, 생명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곳 세컨하우스에서 밥을 먹고 다시 산속으로 사라지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그들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 적응하며 살아가야 함을 깨닫는다. 또한, 그들과의 교감 속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발견하게 된다. 길냥이들과의 만남이 내게 준 것은 단순한 애정 이상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