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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Nov 21. 2023

"엄마가 중학교만 나왔어도 말이지"

자존감 둘째가라면 서러운 친정엄마에 대한 고찰

"너네 엄마가 중학교만 나왔어도
너네 아빠 절~~~대 안만났다."


친정 엄마의 오랜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요. 엄마의 숱한 가정의 반은 아빠의 흉을 보는 걸로 끝이 나지만 종종 엄마의 색다른 직업관을 엿보는 일도 있답니다.


어제는 모처럼 엄마 아빠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는데, 식당 마당에서 한 가수의 공연이 있었어요. 양념갈비로 배를 채운 느긋한 관객들 사이 유독 눈에 띄는 텐션의 박수와 환호! 저희 엄마셨지요.


몇십년을 보아온 익숙한 장면에 아빠와 저는 옆에서 호응을 해주고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아니 나같이 해줘야 가수가 힘이나지! 안그래?” 한참을 즐기다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 문득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엄마가 가방끈 조금만 더 길었어도 저렇게 기타 치는 거 배워서 평생 노래 부르고 다녔을텐데.. "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 그 곳에 삶을 꾸려온 엄마는 당시 많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하고 잠깐의 여공 생활을 하다 아빠를 만났어요. 할머니를 모시며 슬하에 딸을 연달아 셋이나 낳은 고된 일상이었지만 엄마의 끼는 멈출 수 없었답니다.


동네 부녀회장을 도맡아하며 아빠의 직장생활에서 스포츠를 매개로 하는 사모모임에 거침없이 진출하셨어요. 테니스와 볼링 클럽을 날라다니던 엄마, 심지어 운동신경까지 타고나셨어요. 당시 아빠는 시골 농협에서 흔치 않은 서울먹물 좀 먹은 유능한 직원이었지만 정작 사회생활에는 잼병이셨거든요. 그런 두 분 사이에서 능수능란하게 관계를 주도하는 사람은 늘 엄마셨지요.


 일평생 경제활동을 해본 일이 없지만 저희 엄마가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라는 건 세상사람 다 알 정도였어요. 앞자리 7자를 달았던 올해에도 강원도 게이트볼 대회를 석권하며 시골 대표선수 현역으로 여전히 콜 받는 우리 엄마의 요즘 제일 큰 낙은 차출된 게이트볼 대회에서 받아오시는 유니폼이에요.


시골에는 흔치않은 뉴발란스 티셔츠를 고이 꺼내는 엄마, 마치 딸의 간택을 받기 바라는 눈빛으로 말씀하시지요.


" 어머 이번에는 글쎄

브랜드 티셔츠를 나눠줬지 뭐니~  

딸램이 너 가질래? “




육아하면서 책으로 배운 자기효능감, 자존감 이런 개념들을 회고해보면 아주 가까운데 있었어요. 그런 개념을 사람으로 만들면 친정엄마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가 내 명의 집한채 땅한채 없어도 제일 즐거운 사람이 나야- 돈많다고 행복하니?"


몇년 전 아빠명의 재산 때문에 엄마가 기초연금을 탈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낙담해 계셨어요. 아빠가 그간 모은 땅과 재산을 늘 본인 명의로 남겨둔 옛날 사람이었기에 실망감이 더했지요. 엄마는 한참을 신세 한탄을 하다가도 “이럴수록 운동해야지 나 댄스하러 가야겠다” 홀연히 떠나는 친정 엄마는 기승전 나 잘났다 대화의 정석이지요.


 남편은 결혼 후 가까이 보는 친정엄마의 말투를 곧잘 따라하곤 해요. 보통의 어르신들이 자녀나 재산에 대한 자랑을 한다면 저희 엄마의 가장 큰 자랑은 늘 엄마 자신이거든요.


기승 전 이거 봐라 나의 뛰어난 요리솜씨,

이겨봐라 나의 탁월한 운동실력,

전화통에 불난다 여전한 나의 친화력


물론 사실에 근거하지만 종종 과몰입에 빠진 엄마를 보며 킥킥 거리는 저와 남편이에요. 이런 엄마를 평생을 지켜본 저로서는 으레 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처음부터 저희집 식구가 아니었던 제 남편 눈에는 매우 생경한 풍경이었다네요.




 이번 주는 애들 아빠보다 더 중요한 제 육아 파트너, 시아버님의 지방 출장으로 엄마가 급히 파송되셨어요. 엄마는 그 중요한 라인댄스 수업과 앞둔 게이트볼 대회 훈련을 미루고 방문하셨어요. 친정 엄마은 육아의 수고로움을 더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랍니다. 엄마와 떠들고 노는 건 늘 즐겁거든요. 오늘아침 엄마의 전투적인 밥먹이기 실력을 보고 남편이 한마디를 거들더라고요. 어머니는 유치원 차리셨으면 잘하셨을 것 같다고. 사위의 입바른 멘트에 엄마의 어깨가 올라가는 소리를 들으며 등원 준비를 했어요.


 엄마가 중학교 그 이상까지 졸업했다면 또 어떤 일을 하셨을까 종종 상상에 잠겨요. 엄마가 아빠를 만나지 않는 것 말고도 참 많은 일이 벌어졌을 것만은 확실하죠. 엄마는 더 바빠지셨을거에요. 중학교 고등학교 동문회와 모임을 생각하면 말이에요. 초등학교만 졸업하신 엄마의 관련 스케쥴을 보면 확실한 사실! :)


 친정엄마와 함께 한 세아이 육아의 단상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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