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글쓰기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것도 같은 날, 두 군데서. 나는 글쓰기를 가르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글쓰기를 강의해 달라는 연락이 와서 첨엔 뭐지? 했다. 하지만 나는 가을부터 조금은 뻔뻔한 사람이 되기로 했으니, 가르쳐 보겠노라고 섭외에 응했다. 강사 프로필을 작성하고, 홍보 포스터에 소개할 문구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강사’, ‘에세이스트’, ‘작가’ 같은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호칭도 견뎌보기로 했다.
그렇게 저질러 놓고, 지난 10년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이공계를 졸업했고, 책을 낸 사람도 아니고, 셀럽도 아니고, 인플루언서도 아니지만 이런 저런 경로로 글쓰기와 관련된 활동을 느슨하고 꾸준하게 해왔더라. 2011년부터 페북에 글을 쓰며 작은 호응을 얻기도 했고, 블로그 글을 보고 몇몇 독립 잡지에서 청탁이 오기도 했다. 내가 직접 잡지에 기고하여 원고료를 받기도 하고, 몇몇 친구들과 웹진을 만들기도 했다. 2017년에는 브런치 작가로 등록 되었다. 그런 활동들은 업적이 되기엔 소소한 것들이어서, 여기 저기 작은 기록물로 흩어져 있다.
2015년에는 은유 작가의 ‘감응의 글쓰기' 수업을 들었고, 2019년에는 서유미 소설가의 ‘손바닥 소설 쓰기’ 수업을 들었다. 산문과 소설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유일한 쌤들이었다. 2017년부터 마음 맞는 동료들과 별짓(구 하숙공방)이란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독서, 글쓰기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글쓰기 모임을 하며 꽤 많은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사람들의 글을 읽고 피드백을 나누었다. 피드백을 나눌 때 빨간펜을 들고 누가 더 날카롭고 아프게 서로의 글을 비평하는지 겨루지는 않았다. 글쓴이가 글을 쓰게 된 배경과 모티브를 나누고, 인상깊은 구절을 낭독하고, 쓰고자 하는 장르와 스타일을 함께 고민했다. 나는 장르가 되기 이전의 글, 어떤 경계에 있는 글쓰기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나의 역할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독려하는 것, 서로의 글에 대해 섣부른 평가보다는 공감되는 부분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구절이 와 닿았는지 나누고,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조심스럽게 질문하는 것이었다. 조금 다르게 시도해볼 만한 부분이 보인다면 부분적으로 코멘트하기도 했다.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은 성동신문에 <청년, 쓰다> 칼럼을 연재중이고, 성수동쓰다 프로젝트에서 지역잡지 에디터로 참여하고 있다. 브런치에는 매일 쓰지는 못하지만 매일 쓰는 마음으로 에세이와 짧은 소설을 쓰고 있다. 주로 고양이와 오리에 관한 이야기다. 인디자인과 독립출판을 공부하고 있는데 고시원, 하숙집, 옥탑방, 투룸 세입자로 살며 쓴 글들, 그리고 지금 셰어하우스에 살며 쓰고 있는 글을 책으로 엮고 싶어서다. 2014년 가을에 독립하여,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한 '나만의 방’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글쓰기 강의를 신청한 어떤 분이 보내주신 자기소개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네이버에서 권경덕을 검색하자 증명사진과 함께 1970년생 전문직업인 권경덕이 뜹니다. 이분은 아닌 것 같아서 스크롤을 내리자 권경덕의 브런치가 있길래 클릭해 봤습니다. 네이버 블로그가 익숙한 저는 브런치 디자인이 낯설었고, 작가소개만 보고 글은 왜 안보이지 하다가, 뒤늦게 서른여덟개의 글과 작품 3개 코너를 발견했습니다."
검색하면 번듯한 프로필이 탁 나오는 사람이 아니어서 조금 민망했지만, 누가 내 이름을 검색했다는 사실이 재밌어서 빵 터졌다. 덕분에 나도 나를 네이버에 검색해보았고, 1970년생 권경덕씨도 화면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저는 전문직업인 권경덕이 아닌 브런치에 서른여덟개의 글이 있는 권경덕입니다.
똑부러진 직함이 없어서 구구절절 이력을 설명해야 하는 권경덕입니다.
하지만 글을 계속 쓰고 싶고, 글 쓰는 사람과 만나 서로의 글에 반응하기를 좋아하는 권경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