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존재에 스며든 우울감. 나는 나를 탈피할 수 없고, 나를 탈피하지 않는 이상 어둠에서 달아날 수 없다. 행복과는 이미 평행선을 그리며 나아가고 있기에 우울의 종착역에 내려 철로 사이를 걷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나는 철로에 떨어진 아이를 보았다. 이 아이는 왜 승강장에서 떨어졌을까, 누가 등 떠밀었을까, 발을 헛디딘 것일까, 이런 것은 의미가 없다. 아이와 나는 철로 위에 서 있다. 나는 어떻게든 이 아이를 플랫폼 위로 올려놓고 싶다. 곧, 죽음으로 가는 열차가 들어오고 아이와 나는 죽을 것이다. 초점 없는 아이의 눈동자에 죽음이 서려있다.
살리고 싶다. 그 순간, 내 눈에 삶이 보였다. 생명력 넘치는 짙은 눈동자 사이로 죽음이 밀고 들어온다.
눈이 부시다. 나는 죽은 걸까?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동공이 삶을 포근하게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오므라들고, 펼친 손가락 사이로 푸르다는 말에 어울릴 법한 녹원이 보였다.
아이는 살았을까? 나는 살아있는 걸까?
몸의 떨림을 이기지 못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을 고민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 이글거리는 눈동자, 콧망울 사이로 들어오는 싱그러운 풀냄새와 경쾌하며 은은한 시냇물 흐르는 소리. 나는 분명 삶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렇다면 아이는, 아이는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왜 살아있는 걸까.
아마, 아이는 죽었을 것이다. 초점 없는 눈동자를 본 순간부터 그 아이의 죽음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내 눈동자가 죽음으로부터 탈피해 초점을 되찾은 순간은 아이의 눈동자를 보았을 때부터 인가?
맙소사, 난 아이의 죽음을 보고 동정하며 삶을 되찾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