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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킷랩 May 27. 2019

감정은 학습에 선행한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테드 창

1.
안녕하세요, 버킷랩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입니다.



2.

테드 창의 소설을 두 번째로 리뷰하게 되었는데요. 이 책을 통해 테드 창이 만드는 세계관에 흥미를 느끼셨다면 그의 또 다른 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도 재밌게 읽으실거라 생각됩니다. 단편집인 이 책에서 ‘네 인생의 이야기’라는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있으니 한번 살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3.
문학이 주는 즐거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테드 창의 소설과 같은 SF문학은 다른 장르에 비해 특화된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를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관으로 이끈다는 것인데요. 이 새로움이 왜 장점인지에 대해서 영화감독 ‘캐서린 비글로우’의 말을 빌리고자 합니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날 때 영화는 그 순간 개인적인 것이 된다’는 그의 말 처럼, SF문학은 우리를 정상적 일상에서 빼내어 상상의 세계로 몰아넣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혹은 낯선 존재들. 낯선 기술과 그에 따른 낯선 법체계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 잠에서 깨어났다 일어난 냉동인간처럼 소설이 만든 세계에 잠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데요.

익숙한 범주를 넘어선 것들은 우리에게 정상의 범주에서는 생략되었던 질문들을 던지고, 우리는 그 질문에 나름의 답을 하기 위해 자신이 지금껏 쌓아왔던 도덕과 윤리, 올바르다고 인식했던 사회적 규범들을 재고하게 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일상적이라고, 정상적이라고 여겨졌던 보편화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난, 자신이 나름대로 내려본 결론, 나만의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4.
네비게이션이 되어준다던가, 검색을 대신 해준다던가, 바둑 대국 상대가 되어준다던가 하는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애착 대상이 되어주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등장한 이 소설의 세계 역시 우리에게 일상에서는 주목할 일이 많지 않은 몇가지 생각거리들을 던지고 있는데요, 이번 리뷰에서는 그 중에서도 크게 2가지 생각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드리려 합니다.

첫번째는 충분히 복잡한 정신을 가질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그 사용자간에는 필히 감정관계가 생길 것이라는 아이디어입니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합니다. 그런데 경험이라는 것은 인공지능 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인공지능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이나, 환경이 필요합니다. 경험을 겪는 쪽과 경험을 주는 양쪽 모두, 경험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지는 시간들을 함께 공유하게 되는데요.

테드 창이 이 소설에서 가정했듯이, 소프트웨어가 충분히 기술적으로 발달했다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소프트웨어와 그 사용자들 사이에는 함께 나누는 경험과 시간에 비례하는 만큼의 감정의 축적이 일어납니다.

이전에 리뷰한 적이 있는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에서처럼, 인간과 충분한 감정적 교류를 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의 관계는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 어린왕자와 그가 특별히 여긴 단 한송이의 장미와의 관계처럼 애착이 반드시 뒤따르게 됩니다. 물론 사용자별로 그 애착감정의 소화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요.

두번째는 인간이 소프트웨어와 애착 관계를 가지게 된다면, 어떤 애정이 소프트웨어를 더 위한다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입니다.

나와 감정을 나누고 있는 인간 아닌 어떠한 객체를 내가 위해준다는 것은
A. 객체를 인간처럼 위해준다.
B. 객체가 인간이 아님을 인정하고 객체로써 위해준다.

이 두 가지 중 어떤 형태에 더 가까울까요? 작가 역시 이에 대한 선택을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소설 속 디지언트 유저들간의 논쟁을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일한 애정에 대한 각기 다른 표현 방법에도 불구하고 디지언트들과 진정한 감정 교류를 나누고 있는 유저들간에는 공통된 점이 있었는데요. 애정관계에서 자신의 욕망을 덜어내는 희생의 모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끔씩 정지되고 싶지만 자신의 유저인 ‘애나’를 위해서 가슴 아픈 말을 아끼는 디지언트 ‘잭스’나, 디지언트 ‘마르코’가 바이너리 디자이어사와의 계약을 통해 망가질지도 모름에도 마르코에게 스스로 잘못을 선택할 자유를 주는 유저 ‘데릭’의 모습을 통해서 디지언트와 그 사용자들이 서로를 아끼고 있다는 것을 그 방식과는 관계없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5.
어디선가 ‘인간은 신이 만든 기계’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인간 역시 디지언트처럼 복잡한 정신을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래밍된 창조물이라면, 우리의 창조주가 우리에게 가지는 권리는 어디까지일까요? 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허락하고 있을까요?

테드 창의 소설들이 매력적인 것은 그의 상상력보다 그가 기술의 영역에서 인간의 질문을 끌어내는 빛나는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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