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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in Oct 22. 2023

소음으로서 학교폭력

언론의 사회적 책임


자라를 보면 놀라움이라는 감정이 든다



© rayhennessy, 출처 Unsplash





일단 생김새가 우리가 익숙한 육지의 동물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놀랍다.




등딱지하며 고개를 넣었다 뺄 수 있는 신체구조하며 앞발 뒷발이며




어떤 것 하나 익숙한 것이 없다.




또, 자라는 생각보다 크다.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자라는 아주 아담한 사이즈다. 




큰 자라는 8킬로그램 그 이상이라고 하니 상당한 크기일 것 같다.




사실 가장 무서운 것은 자라가 문다는 사실이다. 




자라에게 물리면 약도 없다는게 속설이다.









세상이 '학교폭력'으로 시끄럽다.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그걸 퍼나르는 기자.




단순하게 놓고 보자면,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다.




요즘 학교폭력의 양상은 복잡하기에, 누가 좋고 나쁜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물론 절대적으로 일방적인 가해도 존재한다)




여기서 주목해야하는 건, '이상한 놈'이다.




자극적인 기사를 써야 밥벌이가 되는 기자들이 늘어나면서,




학교폭력은 하나의 좋은 컨텐츠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폭력만큼 대중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컨텐츠도 없다.




우리 대부분은 학교를 다녔고, 학교에 다니며, 혹은 자녀가 그렇다.




모두 다 한마디씩 거들 수 있는 주제인 것이다. 







몇몇 지각없는 언론들이 많들어낸(지각이 있어도 노이즈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노이즈, 즉 소음의 피해자가는 결국 학생이다.




노이즈에 편도체 납치된 학부모들은 작은 것에 예민해진다.




예민해진 학부모는 일반적인 교육활동까지 '학교폭력'으로 인식한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학교폭력'으로 인식된 유사-학교폭력들은 소음(항의,민원 등 뭐라고 불러도 좋을, 가끔은 교권침해까지 번지는 간섭)이 되어 학교까지 전달된다.




교사의 교육활동은 위축되고, 매뉴얼대로 안전한 교육(이라고 쓰고 틀에박힌 주입식 교육)만 하게 된다.







            


        자녀 걱정에 제주도 수학여행까지 따라온 부모들…"미치겠어요"뉴스내용대구로 수학여행 온 중국 하남성 지역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를 투어하고 있다.기사내용과 무관한 사진. 매일신문 DB학생들의 제주도 수학여행에 학부모들이 따라왔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글의 작성자는 학부모들의 지나친 간섭으로 힘들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지난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출처매일신문






모두가 각자 자기 자신의 일을 열심히 했다.




기자는 보도를, 




학부모는 자녀보호를,




교사는 학생지도와 수업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열심히 한 결과는 썩 아름답지 못하다.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10696516





         [매경춘추] 학교폭력 극복하려면 - 매일경제

"엄마는 내가, 누구를 죽도록 때리면 더 가슴 아플 것 같아, 아니면 죽도록 맞고 오면 더 가슴 아플 것 같아?" 이는 요즘 화제의 중심에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작가의 딸이 작가에게 던진 질문이다. 당시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게 만들었던 이 딜레마적 질문이 '더 글로리' 집필의 계기가 되었음을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고, 이 작품은 학교..

www.mk.co.kr




아난티 그룹의 회장이 말한다.








 땅바닥까지 떨어진 교사의 권위 및 학교 교육과, 오로지 자기 자식만을 챙기는 부모의 이기심 및 저질의 가정교육이 가장 큰 원인이다.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10696516






난 여기에, 언론의 책임을 묻는다.




대중이 좋아하는 자극적인 기사로 학교라는 사회적 기관벽을 빵꾸내고 있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 부조리를 고발하는 적극적인 측면도 있지만,




소극적인 측면도 있다고 본다.




말할 것을 제대로 하는 것. 혹은, 잘 모르면 삼가는 것




그것이 언론의 소극적 사회적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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