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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st in Oct 22. 2023

카카오와 학교

공공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카카오톡 #먹통 #학교 #공공재



말하기가 어려운 장소에서는 메신저를 이용한다. 예를 들면, 도서관 같은 곳에서는 소곤거리기 보다는 메신저가 편하다.


급한 일이 있어서 함께 온 아내에게 메신저로 할 말을 보냈다. 


그런데, 메시지 전송이 되지 않았다.



카카오톡이 먹통이 됐다. 관련 데이터를 처리하는 곳에 화재가 났다고 했다. 완전 복구까지는 127시간 넘게 걸렸다. 









“카카오 먹통 사태로 서울시 행정시스템 84종 장애”뉴스 내용지난 15일부터 이틀간 이어진 ‘카카오 먹통 사태’로 서울시 행정 시스템 84종에도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서울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박승진 부위원장이 서울시 디지털정책관에게 받은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서울시 시스템 장애 및 대응 현황’ 자료를 보면, 민간 플랫폼에 연계된 서울시 시스템 107종 가운데...출처KBS



카카오톡이라는 앱을 처음 쓴 건 2011년 스마트폰을 구매하면서부터다. 그 땐 그냥 평범한 메신저 앱이었다. 지금처럼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 이것저것 다할 수 있는 카톡이 아니었다. 메시지를 주고 받는 일이외의 기능이라고는 딱히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딱히 절실하지 않았다. 카카오톡이 안되면,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10년 후 이제 우리의 일상은 이 카카오톡과 그 관련어플들이 없으면 안되는 24시간으로 변해버렸다.



택시를 부르기도, 자전거를 타기도 어렵고, 결제를 하기도 어려웠다.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느끼는 당혹감이란, 당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사람들이 난리난 만큼, 정부도 난리가 났다. 


다시 관련자들이 국감에 불려나왔고, 호통을 치고, 국회의원들은 관련된 입법을 진행한다고 법석을 떨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었다. 데자뷰(Dejavu)였다.




데자뷰(Dejavu)였다.

본 적 없는 것을, 본 것처럼 느낀다. 데자뷰의 아주 간략한 개념정의다. 



사실 카톡이 이렇게 먹통이 된 것은 처음있는 일은 아니다. 그 전에도 업데이트나 기타 사유로 조금씩 서비스에 차질을 빗는 경우가 있긴했다. 그러나 이렇게 장시간동안 마비되어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본적이 있다고? 



그렇다. 본 적이 있다. 다만, 그 분야와 영역이 조금 다를 뿐이다.







최소한의 제재 수단 vs 낙인효과… 교권침해 '학생부 기재', 인권침해일까뉴스 내용“아이들이 절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 때 제일 힘듭니다.” 중학교 교사인 A씨는 몇달 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영상 이야기를 꺼내자 한숨을 쉬었다. 충남 홍성의 한 중학교에서 찍힌 해당 영상에는 한 남학생이 교단 위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을 만지는 모습이 담겼다. 학생 옆에선 교사가 수업 중이었다. A씨는 “그 학생은 좀 심...출처세계일보




우리나라에서 교육 그리고 학교가 먹통이 된 지는 오래됐다. 



학교교육의 팽창으로 거의 모든 국민이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그곳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냥 돌아만가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하는 그 8시간이 안되는 시간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나의 자녀에 국한된 이야기들 뿐이다. 그래서 언론은 그 부분에 대한 보도를 열심히 한다. 내 자녀가 정서적 학대를 당하고있진 않은지 노심초사하는 것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내 아이가 대학에 가버리면 그 관심도 사라진다.



카카오톡 먹통사태가 일파만파되면서, 카카오톡을 '공공재'라고 칭하면서 법망 아래에 두고 관리한다고 한다. 감히 예언하건데, 법을 만들고 법에 의해 그 시스템을 관리한다고한들 이러한 문제는 더욱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발생할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면, 이 역시 데자뷰다.



학교교육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발생한 이유가 학교교육이라고 생각되어질 때마다-우리 사회는 땜질처방식으로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전형적인 대증요법이었다.



(아래 법률의 이름은 편의에 따라, 그리고 언중에 널리 회자되는 비공식적 이름이다.)



선행학습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선행학습 금지법


학교폭력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학교폭력대책법


인성교육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인성교육법


교사보호가 문제라고 생각해서, (가칭)교권보호법까지 만들어질 태세다. 



서로 의견이 달라, 협의를 이끌어 내지 못해 법을 못만들면, 조례라도 만든다. 학생인권조례. 



위의 법들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그래서 학교가, 교육이 바뀌었는지 아닌지는 각계각층의 사람마다 의견이 상이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문제가 심화되고 있으면 심화됐지, 완화되거나 사라진 영역은 없다. 



교육에 있어, 그리고 공공재에 있어 '시장원칙'을 적용하는 것만큼 어리석을 수 있는 것이, 법률만능주의다. 법률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사람들이 모두 법이라는 사회적 강제를 준수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법률만능주의적 사고와 행동은 학생들에게서도 관찰된다. 무슨 일이 생겼다고하면, 아이들은 외친다. 야! '학폭(학교폭력심의위원회)열어!'





출처: 네이버 검색결과. 검색어는 '학교폭력심의위원회'다. 더보기-> 누르기 두려워진다.



위 변호사와 법무법인들을 비판하고자함이 아니다. 이들은 이들의 일을 하는 것이다. 다만, 이들에게 일을 맡기게 하는 법률이, 사회에 물어보아야 한다.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합니까?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합니까?

질문을 바꿔보자. 공공재는 어떤 것입니까. 당연하게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다. 소중하지만 그 중요성을 잊고 지내는 것이다.


교육은 대표적인 공공재이다. 소중한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나이가 차면 들어가고, 나이가 더 차면 나오는 관문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학교를 관문처럼 만들어버린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교육이나 학교를 당연시하거나 졸업장 획득을 위한 형식적인 장소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공공재를 대하는 우리 자세는 '관성'이 아닌, '관심'이어야한다. 해오던 대로만 하기 즉, 관성은 에너지 사용을 줄여주지만, 적절한 대처에는 취약하다.



'법과 제도'의 정비가 사회 구성원들이 들이는 관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 법과 제도는 자전거의 부속품이므로 관심을 갖고 조이고 닦아야하는 것이다. 한 번 설치했다고 부서질 때까지 반영구적으로 굴러가길 원한다면, 그 자전거를 탄 사람은 위태롭다. 또, 방향전환이 무섭고 힘들다고 낭떨어지 혹은 진흙탕길로 페달을 밟는 일은 없어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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