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st in Oct 22. 2023

비교, 욕망, 그리고 소진

'비관론자'가 본 대한민국과 한국교육


나는 성향이 낙천적이지 못하다. 막연히 잘될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이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는 것은 또 아니다. 나름 끈기를 갖고 열심히 한다. 그러나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바 대로 될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잘 하지 않는다.



낙천적이지 못한 기질의 나이지만,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질과 관점은 다르지만, 기질은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낙천적인 사람은 낙관적이기 쉽다. 반대도 성립한다. 



낙천적이지 않는 사람은 비관적이기 쉽다. 



그래서 오늘은 비관론자의 입장에서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이 글의 끝에서 어줍지 않는 트위스트로 희망을 주는 말따위는 하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사회를 개개인들이 모인, 집합체 그 자체로 보는 시각과 그 이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 두 시각과 무관하게, 사회는 결국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정확히는 그 사람들이 가진 생각이나 의지들이 그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농사꾼의 일과처럼 단순했던 농경사회에서 얽히고 섥힌 현재의 지식정보사회로 이행하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그에 따른 행동도 많이 변했다.



한반도로만 렌즈를 좁혀보면, 더욱 이해가 쉬우리라.



멀리도 가지 말자. 



조선.







© lifeandyouth, 출처 Unsplash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자조할 때 쓰는 '헬조선'이라는 말에서 우리스스로가 정신적, 문화적으로 뿌리를 지금으로부터 멀지 않은 과거 왕조인 조선이라는 나라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였다. 양반의 나라. 사농공상의 나라.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엄연한 차별이 존재했던 시기였다. 특히, 직업적으로 그 차별이 심했는데, 소를 잡는 백정처럼 사회적으로 '왕따'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직업과 직업 사이에 차별을 두는, 600년 가까이 한반도에 또아리를 튼 조선의 사고방식은, 사실상 2023년 현재에도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  






            


        "내 자식 기름밥 못 먹여" 실습생 끌고나간 엄마…주저앉은 中企사장뉴스내용수도권 한 제지업체 A대표는 직업계고 실습생 부모로부터 모욕당한 뒤론 교복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공장을 찾아온 어머니가 “내 자식이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일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근무 중이던 자녀를 끌고 나간 것이다.직업계고 졸업생이 중소기업 현장을 기피하는 데는 고졸 출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중소 제...출처한국경제





직업계고 졸업생이 중소기업 현장을 기피하는 데는 고졸 출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과 중소 제조업을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미친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식 사고가 여전한 탓에 중소기업에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기 어려운 환경이 지속된다는 설명이다.




출처: 한국경제, 23년 2월21일 자 







사농공상(士農工商)






글 읽는 선비, 농사짓는 농부, 뭔가를 만드는 공업인, 그다음 뭔가를 파는 상인. 



조선시대에는 이 순서대로 고개를 들고 다니는 각도가 달랐을 것이다. 뻣뻣한 선비들에 비하면, 굽신거려야 하는 상인들은 거북목 증후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OECD 국가에서도 나름 상위권 안에 드는 순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한다. 



나는 이것이, 2023년 현재가 대한민국의 전성기,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피크Peak'라고 본다. 우리가 600년도 더 된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다. 





            


        "K마켓 위력 대단하네"…韓으로 몰려드는 명품뉴스내용한 백화점 명품 담당 바이어는 지난해부터 이전에는 마주칠 일이 없던 사람들과 미팅하는 일이 잦아졌다. 유럽 주요국 대사관 관계자다. 이 바이어는 “해외 브랜드들이 주한 대사관과 국내 에이전트를 통해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상품을 팔 수 있는지 귀찮을 정도로 문의한다”고 했다. < 아무리 추워도 신상은 못 참지&hell...출처한국경제




조선시대엔 갓을 쓰고, 가마를 타고 다닌다고 모두 양반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깜냥(?)이 안되는, 즉 신분이 낮은 이가 갓을 쓰고, 가마를 타고 다니며, 비단옷을 입고 다니다간 큰 화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명품을 입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 모두 '양반'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양반'처럼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양반'님네들의 집안이 어떤지, 혹은 경제수준이 어떤지는 알 수도 없고, 알 바도 아니다. 자본주의와 그 친구 광고는 근거없는 부러움만 양산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 paulsteuber, 출처 Pixabay







이런 현대사회의 특성이, 한국인의 조선 DNA를 자극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비교의 개미지옥'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이 말한 '개미지옥'이라는 메타포는 현재에 유효하다. 





       


        88만원 세대저자우석훈,박권일출판레디앙발매2007.08.0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447211&cid=51642&categoryId=51644





        개미와 개미귀신

[개미와 개미귀신] 개미귀신(명주잠자리의 유충)은 모래밭에 뒷걸음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절구 모양의 둥지인 개미지옥을 만들고, 그 밑의 모래 속에 숨어서 먹이를 기다린다. 개미지옥에 먹이가 들어오면 머리로 모래를 끼얹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큰턱으로 물어 소화액을 넣은 다음 녹여 체액을 빨아먹는다.(동영상 출처 : EBS 동영상 (2001. 6. 28.))

terms.naver.com




개미지옥은 개미귀신이라는 유충이 먹이(개미)를 잡기위해 만든 일종의 함정이다. 이 함정-나선형으로 되어있어 한 번 빠지면 되돌아나가기 힘든 구조-에 걸려든 개미는 열이면 열 모두 개미귀신에게 잡아 먹히고 만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은 이 함정의 나선에서는 어떤 이도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한다. 개미귀신에 가장 가까운 중심부에는 '사농공상'의 밑단 현장노동자나 일용직 노동자들이 있다면, 나선의 끝부분에는 대기업 근로자나 전문직이 있다. 공무원은 이들의 중간지점 어딘가에 위치한다. 



개미귀신은 개미들이 도망가려고 하면 모래를 뿌려 개미들이 나선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저자들은 나선의 끝부분에 위치한 현대판 사농공상 피라미드의 가장 윗단에 있는 이들이 가장 밑단의 이들을 개미귀신에게 던져줌으로써 자신들의 명줄을 조금씩 연장시키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결국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나선을 따라 개미귀신에게 체액이 빨려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를 '소진'이라고 부른다.







© christnerfurt, 출처 Unsplash






인간이면 누구나 남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남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싶은 욕구가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적어도 남과 평등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원초적 욕구인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욕구가 사회 제도적으로, 또 도덕에 의해서나 윤리적으로 관리되었다. 법이 그것을 막고 있었고, 법에서는 허용한다고 쳐도, 사회경제적인 한계나 오랫동안 이어져온 관습에 의해 계층상승의 욕구는 매번 좌절되었다. 조선시대 일어난 크고 작은 민란은 결국 이러한 욕구의 좌절로부터 나온 것이며, 인내천의 동학사상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2023년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관리기제가 없어졌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두가 평등함을 천명하고 있다. 또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나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자리까지 올라가는 데 제한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희소성의 원칙에 의해, 모두가 원하는 것은 희소했다. 결국, 대한민국 사회는 두 가지에 그 관리기제의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학벌'과 '부동산'







사실 이 두 요인은 서로가 서로를 상호보완해주며 상생하는 계층상승의 바로미터이다. 학벌만 있다고 해서, 우리는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또, 땅이 많거나 이 땅을 처분해서 얻는 돈이 많은 사람은 오히려 '졸부'라고 무시받기 십상이다.  경제자본과 사회자본이 결합된 형태의 '성공자본'은 대한민국에서 '선비'로서의 삶을 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한 가지 이론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실제로 있다.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몰락한 후(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에 대표적인 이유를 들라고 한다면, 한 가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무한(      )경쟁에 따른 개인적, 사회적 소진 






괄호 안에 들어갈 것은 많다.



사회적 현안 해결보다  자신들만의 옳음을 입증하는 데 힘을 쏟는 정치를 넣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추겨진 사회적 상승욕망에 따른 개인들을 대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교육'을 넣어본다. 사실 대입경쟁을 위한 '교육'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도 아니다. 입시경쟁은 곧 인간성 말살이며, 획일화된 인간을 만드는 공장의 공정 혹은 범죄자들의 교화시키는 교정과 오히려 가깝다.



정부와 교육부는 여전히 교육을 경제논리로 접근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은 아무리 많은 인풋을 집어 넣어도, 정권말기까지 아웃풋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굳이 예산을 많이 책정할 필요도, 제대로된 개혁을 할 이유도 없다. 다만, 현 정권이 잘하고 있다는 뉘앙스만 보이면 된다) 






            


        학생수 줄어 교육재정 삭감론…"선진국보다 투자 적다"뉴스내용기사내용 요약교육부 지방교육재정 개선 추진단 토론회"OECD 평균, EU보다 사교육비 부담 높아""대선 교육공약 국고로…고등교육세 신설"[청주=뉴시스] 강종민 기자 = 정종철 교육부 차관이 24일 오후 충북 청주 세종시티 오송호텔에서 열린 제1차 지방교육재정 제도 개선 추진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2.01...출처뉴시스




교육을 대하는 이러한 방식-신자유주의적인, 혹은 효율-비용의 접근-은 한국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타스캔들'의 '최치열'은 정말로 허구 그 자체이다.





            


        작가가 '입시맘'…사교육 현실 그린 시청률 13% '일타스캔들'뉴스내용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최치열(정경호)은 잘 나가는 수학 '일타 강사'다. tvN “이번 시험 어려웠지? 울지마. 다 '스불재'야.” 드라마 속 학부모는 물론 드라마 밖 시청자 상당수가 낯설어할 법한 표현이다. TV 화면 왼쪽 아래 귀퉁이에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는 설명자막이 뜬다. tvN 토·일 드라마 ‘일타스캔들...출처중앙일보





경제적 급부나 자신의 명예가 아닌 사랑과 양심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대한다?!



동시에, 그 흔한 학원도 안다니면서 공부를 잘하는 '남해이'도 



반찬가게 사장으로서 너무나 당당하게 대치동을 활보하는 '남행선'도



모두 현실에선 존재하기 힘든 인물이다. 



대한민국은 자신보다 가진 것이 없는 이가 자신보다 나은 상황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강남에서는 더군다나, 대치동은 말하지 않아도...(극 중에서 대치동이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도 있다!)



해이의 친구 선재가 자신을 닦달하는 변호사 엄마에게 말한다.



그 말이 나는 아프다.







엄마는 도대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는거에요?




출처: 일타스캔들 대사 중







당신은 자신의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랍니까?



우리나라가 어떤 곳이 되길 바랍니까?







이전 12화 가이드guide로서의 교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