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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다메 Nov 03. 2024

갓생러로 포장된 밸런스 붕괴 사태

'갓생러', 'N잡러' 라는 말이 처음 유행할 땐 요즘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 별 게 다 유행이네 하고 말았다. 그런데 직업이 다양해지고 공간적, 시간적으로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이 말들은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에 완전히 자리잡아 버렸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일을 할 수 있는 기간은 그에 비해 줄어들고, 내 일자리에 대한 안정성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수입원을 마련해 놓고 이에 대처하려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안정적인 수입원을 포기할 수 없어, 직장은 직장대로 다니고 좋아하는 일을 따로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나는 뭘까. 본업을 제외하면 경제적 수입이 전혀 없는데 이걸 '잡'이라고 할 수 있나. 없다. 나는 지망생이다. 주변에서 자꾸만 갓생러라고 부르는데 나는 그런 타이틀에 욕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내 하루는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정신 없고 피곤하다. 매일 본업을 하면서 그 사이 틈틈이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다른 일들을 한다. 책 읽을 시간이 나면 책을 읽고, 요가 수업을 갈 수 있는 시간이 나면 요가 수업을 가고, 짬이 나면 브런치에 글을 쓰고, 강박적으로 모니터링을 위한 콘텐츠를 시청하고, 이동 시간이나 밤 시간을 활용해 작사를 한다. 피곤하다.




나는 원래도 일과 일상의 경계가 없고 온앤오프가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퇴근해서도 온전히 일로부터 해방된 적이 없는데, 보통은 TV를 보거나 버스를 타고 있거나 침대에 누워 있거나 심지어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일과 관련된 생각을 끊어내지 못하는 편이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지만 큰 불편은 없었고 모든 곳이 내 일터고 모든 시간이 업무의 연장이라는 것이 싫었던 적도 없었다. 그런데 너무 오래 그렇게 정해진 루틴 없이 일을 해서일까.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고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끼어들자 완전히 밸런스가 붕괴되고 말았다.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한 것과 책 읽는 시간을 좀 늘린 것까지는 본업에 좋은 윤활제 역할이 되어 주었는데, 작사 데뷔반 코스가 개강한 뒤로 생활이 모두 작사에 몰빵됐다. 초급 코스와 중급 코스를 수강할 땐 하루에 얼마씩 정해진 시간 동안 과제를 하며 적당히 밸런스를 유지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든 요일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순간에 작사를 생각한다.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순간들에도 불쑥불쑥 끼어들어 흩어진 조각들로 하루를 채운다. 이러다 보니 이도 저도 집중을 못하고 모든 일들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전, 외출할 일이 없던 주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날. 하루를 잘 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단백질 쉐이크를 챙겨 먹으며 하루 일정을 짰다. 지금부터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3시간 정도 작사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 쭉 일을 하기로 (본업 말이다!!) 했고, 늦은 저녁을 먹고 난 뒤에 작사를 좀 더 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챙겨 보다 잘 예정이었다. 이미 이 계획에도 작사 분량이 월등히 많지만 오후 시간에 바짝 집중해서 일을 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실제로는 어땠냐고? 30분쯤 책을 읽다가 작사를 했다. 잠깐 점심을 먹고 작사를 계속 하다가 저녁을 먹고 작사를 했다. 어떡하지. 늦은 저녁 부랴부랴 일을 시작했지만 애매하게 하다 만 작사 작업이 있어서 집중이 안 됐다. 아찔했다. 투잡의 밸런스는 도대체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나는 지금껏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하나만 열심히! 하던 거나 잘!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었다. 잠깐 정신이 아득해져 이 사태를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다 황당무계한 생각을 하게 됐다. 얼른 전업 작사가가 되어서 본업을 그만둬야 하나? 그런 생각. 머리가 돌아버렸나.


나는 내 본업을 사랑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왔고 앞으로 남은 내 커리어들은 명예로울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살아왔다. 가능한 오랫동안 잘 해내고 싶은 일이다. 그동안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어서 퇴사를 결심했어요." 라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할 뿐 한 번도 이직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지금은 좀 궁금하다. 원래 하던 일은 그렇게 그만둬도 정말 괜찮았던 걸까.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나. 나는 괜찮지 않다. 어떻게 지켜오고 버텨온 극악의 여초 프리랜서 생활이었나. 다다음달이면 햇수로 10년 차가 된다.


돈을 벌어다 주지도 않고, 매달 내 지갑을 축내면서 매주 매시간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주제에 내 업을 위태롭게 만들다니. 지망생이라는 건 원래 이렇게 과몰입 상태로 지속되는 걸까? 하고 싶다는 욕심, 되고 싶다는 갈망이 지금은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겠지. 그런데 이 열망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하면 '아, 비싸고 좋은 취미 생활이었다!' 하고 지망 종료 선언을 하게 될까 두렵다. 내 열정도 그리고 내 일상도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는 일이 지금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래야 안전하게 나도 '투잡러'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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