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사를 어쩌다 시작하게 됐는지 얘기를 들어보면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평소 음악/케이팝을 좋아하다 보니 관심이 생겨서. 하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글로 돈을 벌 수 있는 걸 찾다가. 내 경우는 후자 쪽이다. 절반의 확률로 오답에 서 있는 인간.
대단히 큰 착각과 오해 속에서 작사를 시작했던 거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도 되는 건지 착각 동지들이 꽤 있다. 이론을 배울 때만 해도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실전은 달랐다. 그제서야 그동안 선생님들이 했던 말들과, 유명한 작사가들이 했던 말들, 유튜브에서 주워 들은 말들이 이해가 됐다. 글을 잘 못 쓰는 사람들도 당연히 작사를 할 수 있어요. 리듬을 이해해야 해요. 박치에게는 좀 어려울 수 있어요. 데모를 계속 들어야 해요. 작사에 답은 없지만 노래 안에 힌트가 있어요. 그들이 한 말들 속에 사실은 답이 있었다.
가사는 글이 아니라 노랫말이고 작사는 글쓰기가 아니라 음악이었다.
송폼별로 이 구간에 어떤 얘기가 들어가야 할지를 결정할 땐 멜로디의 변화를 따른다. 작게 깔려 있는 효과음이나 애드립에서 키워드를 뽑아낸다. 음절에 맞는 단어를 넣었는데 불러 보니 발음이 리듬에 묻어 나지 않으면 다른 단어로 바꾼다. 3.5음절처럼 들리는 구간이 있다면 연음으로 구성되어 있는 4음절을 찾아 3.5음절에 맞춰야 한다. 가사를 붙이고 나면 가창에 용이한 발음 디자인인지 체크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고음에 어울리지 않는 발음이 있고, 여기선 입을 모으는 것보단 벌려줘야 하는 구간이 있고, 연이어 부르기엔 어색하게 들리는 받침들이 있다. 중요한 건 멜로디와 리듬과의 어울림이다.
물론 이 와중에도 눈에 띄는 메인 키워드와 메세지, 아티스트와 어울리는 캐릭터 설정, 곡 분위기에 어울리는 상황 설정, 일관된 스토리 전개, 귀에 꽂히는 중독적인 코러스 구간 등등은 기본으로 챙겨 가야 한다.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결국 작사는 잘 짜여진 구성 위에 얹는 '말 디자인' 같은 거다. 괜히 '노랫말'인 게 아니다. 음악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해본 적도 없고, 몇몇의 싱어송라이터의 노래만 반복해 들으면서 살아온 나는 이 현실을 깨달았을 때 조금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세상이 날 억까하는 것 같았다. 근데 뭐 누가 나를 속였나. 나는 혼자 오해했을 뿐.
지금은 '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음악으로 먹고 사는 나? 제법 멋지잖아.' 라며 마음가짐을 고쳐 먹었다. 쓰는 건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지만, 음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남들보다 서툴고 느리고, 또 헤매도 전혀 이상할 리 없고 속상할 필요도 없는 분야. 인생에 낯선 분야에 뛰어 들었으니, 조금은 천천히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며 이번 달도 작고 소중하게 일보 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