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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Dec 17. 2020

커피라는 이정표

모두 커피 이후의 것들



종종 본가에서 쉬는 날을 보낼 때면 동생과 출근길을 같이한다. 출근 시간에 맞춰 새벽같이 일어나 얼굴을 대강 닦아내고, 화장대에 나란히 앉아 초점 없이 화장품을 두드리다 보면,   하나의 음성은 어김없이 적막한 새벽 공기를 가른다.

"아, 진짜 가기 싫다."

남겨진 쪽은 늘상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 친다.

"나도."



이를 신호탄으로 우리의 아침은 막을 올린다. 와 진짜 졸리다, 그니까. 어제 몇 시에 잤지? 아, 오늘은 뭐 입어. 내 말이 진짜 뭐 입어. 그러다 다시, 아 진짜 가기 싫다, 그니까.

짜여진 대본처럼 반복되는 오프닝이지만, 던져진 시름에 동정이나 위로를 건네기 보다 한 웅큼의 시름을 더해 데굴데굴 굴려주는 이가 있는 경우엔 꽤 재밌고 흥이 난다. 슬쩍 운만 흘려도 문장을 완벽히 완성해주는 무언의 동지와 총알을 장전하는 일은, 전투력 향상에 언제나 특약이기에.



차 시간을 몇 분 남기지 않은 채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잡아 타고 내려간다. 그리고 그 때 쯤에서야 비로서 완전히 떠진 눈을 거울에 몇 번 깜빡여 보고, 아직 어둑한 거리를 나서 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타며 다시 입을 뗀다.



‘와, 커피 진짜 땡긴다.’

‘진심. 빨리 가서 커피 사 먹자.’



언제나 끝에는 커피가 있다. 우리의 아침 씬 8할을 차지하는 장면은 보통 가기 싫어- 부류의 대사들이지만, 마무리는 틀림없이 커피다. 모든 한탄은 결국 커피로 귀결된다. 그리고 커피는 이야기를 깔끔하게 묶어낸다.



출근길 천근 같은 발걸음. 그 무게의 이유가 일 때문인지, 혹은 사람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날 떠미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도 못한다는 마음의 짐 때문인지, 나는 왜 저 곳을 향하는 것이며, 지금 유예한 행복의 끝을 맛볼 수는 있는건지, 이런 저런 답답한 상념들을 묶어내는 끝맺음이 한 컵의 검정 물이라니. 허무맹랑한 이야기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커피에겐 그런 힘이 있다. 그것이 물론 우리가 대단한 커피 애호가여서는 아니고, 배후에 어떤 심오한 서사가 숨겨져 있어도 아니고, 그냥 어찌 보면 그것은 우리의 정신승리인 것이다.


역 내 파리바게트에서 공수한 검은물 두 잔


컵 하나를 가득 채운 얼음들 사이로 조르륵 채워지는 물. 그리고 그 맑은 배경을 바탕으로 순조롭게 피어나가 마침내 컵 안을 검정빛으로 가득 물들여 버리는 커피 추출액, 고소한 향, 마지막으로 빨대를 휘휘 저어 달각거리는 얼음 소리를 내며 그 검은 물을 한 손 가득 움켜쥐는 일까지. 이런 일은 드물게 오각을 자극한다. 그리고 말한다.



어쩌면 모든 일들은 커피 이후의 것들일 뿐이라고. 그러니까, 모든 것의 시작은 결국 커피이고, 그 과정에도 커피가 있으며, 이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 내 세포를 자극시키는 이 씁쓸한 검정 물을 삼켜내면 뭐가 됐든 이 여정의 이정표를 찍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뚜껑 위로 새어 나오는 커피향을 코 끝에 스친 뒤에, 매 마른 입안에 차가운 커피 한 입을 쪽 빨아 넘기고 우리는 남겨진 마지막 대사를 마저 읊는다.



‘와, 이제 좀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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