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사이의 집착에 대한 조사 결과가 놀랍다
추석연휴 기간에 많이 당혹스러운 조사 결과를 접했다. 연인 사이에서 최악의 집착으로 남성은 '휴대폰 검사'를, 여성은 '대인관계 통제'를 1위로 꼽았다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연인 사이라고 해도 그렇지 휴대폰 검사를 한다고? 그러면서도 연인 관계가 깨지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니 놀라웠다. 내가 젊은 세대의 세태에 뒤떨어진 것은 아닌지, 설마 하니 일부의 얘기이겠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 조사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2030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연인의 집착' 관련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이 조사는 설문조사 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을 통해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20세~39세 미혼남녀 총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신뢰수준은 95%에 표준오차는 ±4.38%p) 그냥 인터넷 설문 응답 같은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신뢰도를 갖춘 조사로 보인다.
조사 결과를 살펴봤더니 미혼남녀 10명 중 8명은 과도한 집착을 데이트 폭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성 응답자의 86.8%와 남성 응답자의 75.2%가 '과도한 집착은 데이트 폭력'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론 연인 사이의 집착이 없을 수는 없다. 실제로 적당한 집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미혼남녀 76.0%는 '연인 사이 적당한 집착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남성 응답자의 76.4%, 여성 응답자의 75.6%가 이같이 답했다.
문제는 나쁜 집착들이다. 연인 사이 최악의 집착에 대해서도 물었더니, 남성은 '휴대폰 검사'를, 여성은 '대인관계 통제'를 1위로 응답했다. 남성의 27.6%, 여성의 22.0%는 '휴대폰 검사'가 최악의 집착이라고 응답했고, 남성의 18.0%와 여성의 23.6%는 '위치 추적'이라고 응답했다. 이 밖에도 남성 15.2%, 여성 26.0%는 '대인관계 통제'라고 응답했으며, 남성 16.0%, 여성 9.6%는 '사생활 간섭'이라 응답했다.
연인 사이에 휴대폰 검사를 하다니. 무슨 특별검사가 연인을 상대로 휴대폰 압수수색이라도 매일 같이 하는 것일까. 짐작하건대 혹시라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지는 않을까를 의심해서 문자 메시지, 카카오톡, 통화기록 같은 것들을 뒤지는 것일 게다. 그토록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쯤 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격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독점적인 소유욕이다. 그런데 속이고자 마음먹는다면 방법이 없을까. 만나기 전에 문자 메시지들 다 삭제하고 사진도 삭제하고 그러면 되는 것 아닐까. 아, 그런데 만나고 있는 시간에 오는 카톡 소리를 함께 듣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실시간으로 보자고 하면 보여줘야 하는 것인가. 정말 정신 사납게 만드는 상황에 대한 상상들이 이어진다. ‘위치 추척’은 또 무엇인가. 연인 사이가 무슨 경찰과 범죄 피의자 사이의 관계도 아닐진대, 어디 어디 이동했는지 일일이 확인을 하다니. 아무리 연인 사이어도, 아니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연인 사이이기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 연인의 집착을 겪어본 이들은 10명 중 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경험한 연인의 집착은 '연락 집착'이었으고 '대인관계 통제', '사생활 간섭'이 뒤를 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집착은 물론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집착을 통해서 서로 간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집착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상대의 인권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방식의 집착은 말이 사랑이지 ‘데이트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유지된 사랑은 그리 오래갈 수가 없다. 오래가도 변하지 않는 사랑의 전제는 서로 간의 믿음이다. 그런데 이런 나쁜 집착은 불신에 기초한 것이기에 오래가는 사랑을 만들기 어렵다. 아무리 시대와 세태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얘기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