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초 벨리니 오페라극 <노르마> 한국 공연
19세기 초반의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 빈첸초 벨리니는 ‘철학적 작곡가’라는 당대의 평을 들었다. 그런 벨로니는 자신의 작품들 가운데서 <노르마>를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내가 탄 배가 난파한다면 다른 오페라는 그냥 두더라도 <노르마>만은 구해내려고 애쓸 것이다."
10월 27일 저녁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관람한 <노르마>는 그런 말을 이해하게 만드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갖춘 예술적 품격이 넘치는 작품이었다. <노르마> 공연이 있게 되면 프리마돈나를 누가 맡는가에 대한 관심이 따른다. 19세기에 인기를 구가했던 <노르마>가 20세기 들어 공연이 줄어들었던 이유로는 노르마 역을 소제대로 부를 수 있는 가수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사정이 꼽힌다. 이 오페라에서 여주인공 노르마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벨라토 창법에다가 가장 고음역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요구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여지원과 데시레 랑카토레가 번갈아가면서 노르마 역을 맡았다. 세계적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발탁했다는 여지원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랑카토레 또한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오페라 가수로 꼽힌다고 하길래 이날 공연을 찾아갔다. 역시 노르마 역은 아무나 맡는 것이 아니었다. 랑카토레의 가창력은 정말 대단했다. 1막 1장에 서 나오는 대표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에서 매혹적인 노래들 들려주더니 내내 압도적인 성량에 고음역을 들려주었다.
스토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갈리아의 켈트족은 드루이교의 지도바 오로베소와 그의 딸인 여사제 노르마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노르마는 로마군 사령관인 폴리네오와 몰래 사랑을 나누어 두 아이까지 낳아 숨겨 키우고 있었다. 그래서 로마 점령군에 맞서 싸우려는 오로베소의 뜻과 달리 평화를 지키는 것이 신의 뜻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노르마에 대한 사랑이 식은 폴리네오는 변심해서 노르마의 시중을 드는 아달지사를 사랑하게 된다. 아달지사의 고백을 통해 그런 사실을 알게 된 노르마는 폴리네오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가 타오르지만, 폴리네오를 설득해서 노르마에게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아달지사의 말을 믿고 기다린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허사가 되자 자신을 기만한 아달지사를 향한 분노가 폭발한다.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했던 노르마는 이제 분노하여 군중들 앞에서 로마 점령군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그 와중에 폴리네오는 아달지사를 데려가려고 왔다가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잡혀온다. 노르마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폴리네오와 단둘이 담판을 하려 했지만 실패한다. 이에 노르마는 군중들을 소집해서 신의 뜻을 어긴 여사제가 있다며 고발하겠다고 한다. 군중들이 그녀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외치자 뜻밖에도 노르마는 그것은 바로 자기라고 밝힌다. 분노한 군중들 앞에서 노르마는 화형대를 준비해 달라고 한다. 불길에 몸을 던지려고 가던 노르마는 아버지 오로베소가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죽는다. 원작에는 노르마가 화형대에서 죽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총에 맞아 죽는 것으로 되었다.
만들기에 따라서는 사랑과 배신과 분노와 복수의 스토리 라인으로 가져갈 수도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알렉스 오예가 연출한 이번 <노르마>는 강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의 낭만주의적 색채는 절제되는 대신, 광신주의적이고 맹목적인 규범들을 강요받는 개인의 인간적 고뇌를 담고 있다. 종교는 권력의 도구이자 자신의 규범에서 어긋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노르마는 자신에게 주어진 여사제로서의 역할과, 사랑에 갇혀 있는 인간적 감정 사이에서 갈등한다. 노르마는 사랑에 휘둘리고 배신에 상처받는 연약한 존재이면서, 분노의 전쟁을 선포하고 자기 스스로를 심판하는 용기를 가진 강하고 능동적인 여성이기도 하다. 흔히 여주인공이 피해자로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것과는 달리, 주어진 비극적 삶 앞에서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상이 부각되기도 한다.
알렉스 오예는 노르마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오페라 초반에서 노르마는 높은 지위 덕분에 세상의 정상에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깊은 심연으로 미끄러져간다. 노르마는 어쩌면 어려움을 딛고 살아남은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조국과 종교에 대한 반역자로 보기도 하지만, 노르마의 죄는 과연 무엇인가? 사랑에 빠진 것? 엄마가 된 것? 둘 다 그렇게 중대한 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노르마의 가장 큰 죄라고 한다면, 파괴와 전쟁을 광적으로 요구하는 신의 품 안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종교에 중독된 사회에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한 것이다.”
‘노르마’는 국가의 강요에 맞선 개인적 비극의 상징이며, 종교와 사회의 편협한 규범 앞에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던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니 ‘노르마’의 얘기는 로마 시대를 초월하며 오늘의 얘기로 공감할 수 있다.
연출가 오예는 전통적 해석에 걷히지 않고 과감하고 현대적인 연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르마는 드레스가 아닌 바지를 입고 나오고, 병사들도 현대 군인들의 복장이다. 소파가 있는 거실, TV와 총이 등장한다. 오페라극을 현대화하는 요즘 트렌드와 맥을 같이 한다. 화려한 무대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3500여 개에 이르는 십자가를 무대 전면에 배치한 것이다. 그 많은 십자가들이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의미에 대한 해석은 관객들의 몫이다. 이런 수준 높은 오페라극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복이다.
<출연>
노르마(소프라노): 데시레 랑카토레
아날지사(메조 소프라노): 김정미
폴리오네(테너): 이라클리 카히제
오로베소(베이스): 송일도
플라비오(테너): 서범석
클로틸데(소프라노): 김효주
연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합창: 노이 오페라 코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