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수영을 시작했다.
할 줄 모르던 것을 하게 되는 경험은 소중하다. 내가 제멋대로 하던 것들 정돈하여 누군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알려주는 일도 그렇다. 수영을 배우면서 마음과 상관없이 몸은 늘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어제 수영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생각에 잠겼다. 사는 게 왜 이렇게 별 게 없을까.
휴가 기간이라 혼자 집에서 지내면서 하루 종일 하는 고민이라곤 뭘 먹을까 뿐이었다. 무심코 마트에 들어가서 단호박이 싸길래 하나 집어 들었다. 유부초밥 거리를 사서 집에 와 쌀을 안쳐놓고, 단호박을 쪘다. 단호박을 찌는 동안 놀다가, 찐 단호박을 먹으면서 취사를 시켜놓고 단호박을 다 먹은 뒤엔 유부초밥을 해먹고... 이렇게 먹는 일에만 세 시간쯤 쓰고 나니 기분이 퍽 평온했다. 이거 먹고 다음엔 뭘 먹지, 고민해본 게 처음이었다. 나는 말랐고, 마른 이유는 단순히 많이 먹지 않기 때문인데, 그렇다보니 먹는 일로 크게 고민을 안한다. 고민하다 귀찮아질 때쯤 그냥 굶기로 하니까. 그런데 먹는 일에 시간을 써보니까 마음이 참 편안하고 좋았다. 단호박 1980원 짜리가 참 맛있구나, 반복해서 생각하느라 그랬는지.
사소한 식사를 마치고 나서 숨을 한 번 쉬니까,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진짜 별 거 없는 거. 어쩐지 사람들이 멋지다고, 소중하다고, 대단한 것처럼 포장해놓은 인생의 민낯을 마주한 것처럼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포장을 다 벗기고 나서야 참맛이라면 참맛을 알게 되는 것일텐데, 어쩌면 그게 두려워서 다들 가리는 걸까. 무더운 여름에 찐 단호박 먹고 땀 나는 거. 수영장에서 하찮은 발차기 한다고 힘빼고 숨을 몰아쉬는 거. 모르겠다. 다른 사람한텐 인생이 더 대단할지도? 그러나 나에겐 인생이 그 두가지였던 것 같다.
말갛게 씻은 얼굴. 메이크업을 해야 더 깔끔해 보이는 얼굴같지만 실은 민낯이 제일 깨끗한 얼굴인데, 이게 인생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것들 실은 다 가면을 쓴 얼굴 같았다. 인생은 내게 얼마나 많은 가면을 벗어줄 것인가.
점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