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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a May 16. 2022

변화 2

94화

이 곳에 글을 쓰지 않은 지 만 2년도 넘게 흘렀다. 여기엔 없어도 2년의 날들은 정확히 나를 관통해서 지나갔다. 하루하루를 다 기억해내라고 하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이 든다. 그 날들은 내 인생의 어떤 날들보다 분명했다.


변화는 안에서부터 일어난다. 예전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어렴풋하지만, 그건 그 때의 나보다 오히려 지금의 내 모습이 좀 더 낯설기 때문이다. 그게 벌써 '예전의 나'라고? 이렇게 써야한다고? 예전의 내 모습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건가? 그 모든 질문에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렇구나, 그게 벌써 2년 전.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이렇게 변해왔구나.


예전엔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하면 외출하기도 싫었다. 겉모습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그건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뿐. 나는 길가다가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한 모습이 아닐 때마다 조금씩 상하는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옷장에는 엄마가 사줬거나 남자친구가 골라준 옷들 뿐. 내가 산 옷은 한 손에 꼽을만큼 적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 땐 몰랐다.


요 며칠 옷 쇼핑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은 몇 년 째 옷을 사지 않았다는데. 옷을 살 때마다 이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 건지 자꾸 되묻는 버릇을 애써 무시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그래도 고르고 골라 그 중에 몇 개를 샀고, 나는 이제 외출 할 일만 손꼽아 기다린다.


이미 입고 싶은 옷에 대해 마음은 다 정해져있다. 입을만 한 날씨, 입을만 한 일만 생기면 된다. 이런 기분으로 살아본 지는 꽤 오래 됐다. 아주 어릴 때, 내가 갖고 싶은 옷을 엄마가 사주었을 때 정도일까. 아니면 새 우산을 사서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대학교 1학년 때 즈음인가. 나갈 준비는 다 되었는데 나갈 일이 없어 때를 기다리는 것과, 매일 나가야만 하는데 언제나 준비가 안되어있어 늦거나, 미흡한 모습으로 밖을 돌아다니는 것. 그 중에 뭐가 더 유쾌한 경험일까.


똑같다. 예전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인생은 매일같이 나더러 넌 어떤 사람이냐고 빨리 대답하라고, 결정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나도 준비가 안 되었는데 무대로 올려보내진 배우처럼 어색하고 뚝딱거리면서 하루를 살고 나면 집에 돌아와 엉망이 된 기분을 새벽까지 추스르는 날들. 사실은 그렇게 나를 내몰았던 건 나 자신인데 그 땐 몰랐다. 차라리 마음 편히 살 것을. 남 눈치도 아니고 평생 내 눈치를 보고 살았던 거다.


지금은 뭐랄까. 좀 실망스럽기도 하고, 이 값에 이런 옷을 샀다는 걸 적당히 모르는 척 하고 넘어가야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 자신으로서의 삶에 많이 익숙해졌다. 공감이 되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나갈 준비가 되어있다고나 할까. 나를 보여줄 준비. 무대에 올라갈 준비.


그토록 애를 쓰고 때론 애를 쓰지 않아야 하는 줄 알고 애써 긴장을 늦추면서, 그렇게 간절히 살아온 날들. 후회는 없지만 그리움이 많이 남아있는 날들. 2년동안 예전의 나로부터 멀어지다가 점점 그리워하며 지금의 나로 변했다. 브런치는 여전하네. 다시 종종, 100화를 넘길 때까지 여기 글을 쓰러 올게요. 여름이 가까이 오고 있겠죠.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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