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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호 Jul 14. 2024

싸움의 어떤 종류

거의 모든 싸움의 기록 4-1

 약국이다. 사는 일이 모두 귀찮은 일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흰색 가운을 입혀놓으면 그 40대 약사와 아주 흡사할 것이다. 약사는 처방약을 받아 든 할머니에게 뭐라고 웅얼거렸다. 할머니가 다시 묻는다.

 “어떻게? 잘 모르겄어.”

 “아까 설명해 줬잖아요.”

 접수대 건너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 약사의 시선은 입구 오른쪽에 매달린 TV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약국 안 분위기가 싸아하다. 잠시 후, 소파를 박차고 일어선 한 여성이 약사를 노려보며 다가간다.

 “그래서 뭘 설명했는지 다시 말해 봐요! 똑바로 다시 말해 봐요!” 

 작은 체구이지만 안경 너머 눈빛이 불타는 여성이다. 목소리는 크지도 높지도 않으나 말은 바로 약사의 목에 날카롭게 꽂힌다. 얼어붙는다.

 “우물쭈물 얼렁설렁 당신 엄마한테나 뭉개고, 당신 엄마 아닌 사람한테는 알아들을 수 있게 한 글자씩 따박따박, 다시 설명해 봐요!”

 “아, 그게, 아까…….”

 “그래서 이 약국 약 먹고 병 낫겠어요? 귀 막히고 속 터지는 병 더 걸리지 않겠어요?”

 말뿐이지만 통쾌하다! 왜 통쾌할까? 우리가 이유 없이 을이 되는 곳들이 있다. 의료기관이 그렇고 경찰서를 비롯한 관공서가 그렇다. 거기에서 나약한 ‘을’ 중 하나가 ‘갑’과 싸웠기 때문이다.

 힘든 싸움이기는 하지만 ‘을’이 ‘갑’과 싸워야 한다. ‘병’이나 ‘정’은 ‘갑’과 더 멀다. 멀다는 얘기는 더 약하다는 얘기이다. 이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은 ‘을’과 ‘병’이, ‘병’과 ‘정’이 싸우는 경우이다. 이때는 더 처절하고 더 치졸한 싸움이 된다. 그리고 싸움의 결과로 생긴 모든 이득은 ‘갑’에게 돌아간다. ‘을’이라도 나서서 싸워야 하는 이유이다.

 이 60대 시인은 평소에는 말수가 적지만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만나면 입매가 아주 매서워진다. 원래 구부러지지 않는 성격이기에 그의 곁에서는 이런 싸움 구경이 드물지 않다.

 구청이다. 그러니까 창구에 선 민원인이 된 것이다.

 “난 세금 밀린 적이 없는데, 체납통지서가? 확인 좀 해주세요.”

 투명한 플라스틱 벽 너머 창구 직원은 뭘 보는지 고개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턱이 조금 움직이며 왼쪽을 가리킨다.

 “저기, 4번요.”

 “예? 뭐라구요? 나 좀 보면서 바로 얘기해 주세요. 뭐라고 했어요?”

 그는 한 번 더 자문자답하듯이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일에 열중이다. 뭐 하나는 열심히 하고 있지만 자신의 임무는 아닌 것 같다. 민원인은 조용히 돌아선다. 그리고 안내판에서 뭔가를 찾더니 계단을 오른다.

 3층 구청장실의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문 앞의 책상은 비어있다. 문 하나를 더 연다. 구청장인 듯한 남자와 얘기하고 있던 여자가 뛰어온다.

 “무슨 일이시죠? 약속 없이 이렇게 막 들어오시면…….”

 이내 민원인의 높지도 크지도 않은 목소리가 구청장을 향한다.

 “구청장님이 대통령이라도 되나요? 제가 만날 수 없는 사람입니까?”

 구청장은 일어난다. 조금 난감한 표정이다.

 “아닙니다. 이리 앉으시죠.”

 그 민원인은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문 앞에 서서 묻는다.

 “구청장님, 시민이 누구인지 아시죠? 저는 세금을 내는 의무를 다한 시민으로 여기까지 시간 내서 찾아왔습니다. 민원이 뭔지 아시죠? 시민이 행정기관에 행정을 요구하는 일 맞죠? 그런데 내가 왜 행정기관에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구청장님이 설명을 해주시죠?”

 질문이 창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요구만으로 카타르시스가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 감정은 주로 싸우는 을에게 이입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심리적 연대라고 할 수 있을까?

 헌데 이런 싸움은 보거나 듣는 이에게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줄지언정 실질적 이득은 거의 없다. 대개 사과나 받으면 그걸로 끝이다. 반대로 실질적인 결과물을 얻어내는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그들 중 하나를 만나야 한다. 역시 60대 여성인 그를 우리는 그냥 총장님이라고 부른다. 대학과는 아무 관계없는 총장님이다. 이참도 나도 이런 거 한번 써본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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