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날의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애진 Mar 11. 2019

이 늙은 뱀의 종류를 아세요?








이 느낌을 아냐고 물어보면 모두 모른다 했다. 알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던 적도 있지만, 서로 정말 똑같은 느낌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공황발작의 일종이지 않겠냐고도 했다. 하지만 그 어투에도 확신은 없었다. 출처도 기억나지 않는, 인터넷 여기저기를 떠돌던 글에서 우리 몸에 자살 프로그램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세포자살을 의미했던 듯한데, 초등학생이던 나는 내가 그 프로그램 때문에 때때로 이 느낌에 휩쓸리나, 싶었다.


주로 활달함이나 생동감 한가운데서 갑자기 나는 주변의 모든 풍경과 거리감을 느꼈다. 이 장면에서 나만 없어지면 될 것 같은데, 내가 있어서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어떻게 설명해도 완벽하진 않다. 늘 명치가 싸해진다는 말로 시작했고, 생각이 아니라 느낌이라고 마무리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라, '죽어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5년 전쯤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또 마주한 이 상대의 샅바를 붙들고 1시간 여 동안 분투한 끝엔 겨우 세 문장을 전리품으로 남긴 채 내 정신도 탈진했다.


늙은 뱀이 어린 나의 명치끝을 바닥 삼아 꼬리를 꼿꼿이 펴고 서 있다. 안팎의 경계에서 꽉 막힌 채 목 밖으로는 넘어오는 일 없는 그의 머리에서부터, 소름을 닮은 꼬리에 이르기까지 아주 천천히 묵직한 파동이 인다. 꿈틀거리는 내장을 둘러싼, 껍데기는 뱀이 찢어버리려, 하는 허물로 변신하는데, 죽은 카프카가 나를 죽을 듯이 비웃다 저 멀리 사라지고 있다.


언젠가는 이 놈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면 그래, 그 느낌 알지, 이런 거잖아. 하고 돌아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남은 날들이 많으니 혹시 모르는 일일 테지만 내 세계는 꾸준히 좁아지고 있고 나는 이 질문을 어디에서 누구에게 던져야 할지도 역시 모른 채로, 내가 지금 울고 싶은지 아닌 건지도 모른 채로,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그렇게…….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키운 팔할(八割)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