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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Dec 09. 2019

멍청한 침착










시작은 약 4년 전, 더블린으로 어학연수를 간 대학 동기와 전화영어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통화를 시작하기 두어 시간 전부터 이따금씩 왼쪽 가슴 밑이 뻐근했다. 불편한 느낌에 허리를 펴면 더 아파서 새우등으로 자취방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다. 떠오르지 않는 영어단어들을 재촉하며 한창 통화를 이어가는데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었다. 한국어로 말해도 아무 문제없었을 것을 나는 끝까지 영어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I think I have to go to hospital.


119에 전화했다. 곧장 눈물이 났다.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뛴다고 말했다. 성별도 기억나지 않는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나를 진정시키려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심장이. 이렇게 갑자기. 내가 죽을까봐 무서웠다. 울면서 가방을 챙겼다. 혹시나 병원에 길게 있게 될까봐 세면도구와 충전기 같은 것을 가방에 쑤셔 넣었던 것 같다.


가방을 메고 수면잠옷을 입은 채로 구급차에 올랐다. 분명 울면서 구급차를 불렀고, TV에서 보던 구급실 안쪽 상황은 늘 긴박하던데. 아주 조용히 아무 일도 없이 병원에 도착했다. 두 발로 걸어 들어간 응급실에서 나의 행색은 그 누구의 주목도 끌지 않았다. 다만, 나 혼자서만, 내가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필요한 딱 그만큼 퉁명스러운 간호사가 말했다. 먼저 수납을 해야 한다고 했었나, 아니면 진료 접수부터 하라고 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무튼 절차적인, 행정적인 그 무언가였다.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은 나는 순서를 기다리며 침대에 누웠다.


혼자 옆으로 돌아누워 내 모든 신경을 심장박동에 집중했다. 또 심장이 빨리 뛸까봐 걱정이 됐다. 기대한 게 아니었는데 기대에 부응하는 듯이 자취방에서와 똑같은 속도로 내 심장은 두 번 그 짓을 반복했다. 나는 또 겁이 났고, 동시에 안도도 했다. 헛걸음한 건 아니구나. 그때 근처 침대 옆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혼자 왔냐고 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내 대답에 아주머니는 낙상방지용 손잡이를 올려주고 하늘색 병원 이불을 덮어줬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검사 결과는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고 시간은 새벽 다섯 시, 점점 동이 텄다. 구급차를 불러서 생긴 비용이 따로 없다는 것에 놀랐고, 병원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적잖이 놀란 대학 동기에게 다시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그날 하루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였나.




두 번째는 집에서 자취방으로 올라가려는 버스 안에서였다. 저녁 여덟 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앉아 멍하니 컵 홀더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조금 어지러웠고, 시야가 흔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고는 바로 심장이 또 날뛰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서 버스를 박차고 내려버렸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엉엉 울었다. 병원으로 갈 테니 엄마도 병원으로 와달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고는 터미널 매표소를 찾아가 표를 환불했다. 출발 시간이 임박해서인지 표값의 10%는 돌려받지 못했다.


두 번째로 찾아간 응급실에서는 내 심장이 급발진을 하든 말든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의사에게 빨리 좀 검사해달라고 화를 냈다. 하지만 심전도도 정상, 다른 무엇도 정상, 트집 잡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는 내게 말했다. 정신적인 문제일 수 있으니 그쪽 진료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엄마 앞에서 구구절절 입을 놀려댔다. 억울했기 때문이었다. 엄청.


집으로 돌아가면서 엄마는 내게 물었다. 차표는 어디 있냐고. 그래서 얘기했다. 내리자마자 환불부터 받았다고. 엄마는 뭐라 해야 할까. 어처구니없다는 반응도 아닌, 잘했다는 반응도 아닌, 다른 그 어떤, 반응이었고 나도 그런 엄마를 이해했다. 가방을 챙기면서도 환불을 받으면서도 나 역시 스스로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한밤의 응급실 상하의 한벌 세트 수면잠옷보다 더 뭔가 우스꽝스러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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