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안부인사와 축하를 건네받은 생일날 저녁에, 모두가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12월 마지막 날 11시 50분에, 간만에 시끌벅적한 술자리에 나가 이렇게 재밌게 노는 법도 있었지, 흐뭇하게 돌아가는 길 한복판에서 공동현관으로 향하는 마지막 몇십 걸음도 채 남지 않은 때, 대낮에 엄마가 차려준 밥으로 배를 잔뜩 채우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온 지 두 시간쯤 지나서 해가 기울 때, 나는 그런 때 꼭 따끈한 흰쌀밥 한 숟갈을 입에 떠넣고만 싶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한 숟갈이 생각날 때면, 밥알갱이 하나하나에서 올라오는 그 모든 김이 내 명치에서 두 눈으로 액화되어 쏟아지려는 것을 억누르곤 한다. 그 흰쌀밥 한 숟갈은 마치 탈이 난 내 윗배와 아랫배를 번갈아 쓰다듬는 엄마의 뭉툭한 손가락 마디마디처럼 다정해서, 하루 종일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로 내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낯선 것들을 쑥 내려가게 해 줄 것만 같다. 애초에 나는 그렇게 타고났으니. 문틈에 손톱을 찧어도 사람들 앞에서 한 번쯤 징징대는 법을 몰랐으니. 오히려 검붉어진 손톱에 대고 누군가 "아이구, 아파서 어떡해." 한 마디 얹기라도 하면 온 마음이 두드러기라도 난 듯 간지러웠으니. 온종일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온도에 둘러싸여 있다가 떨어져 나오면 나는 그렇게 불현듯 나를 툭 치는 밤의 냉기에 반응하는 것이다. 원래 밤을 사랑해왔다 고백해도, 냉기가 차라리 익숙해도, 왜 나를 잠시 떠났냐고 쏘아대는 밤의 행패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잠이 도무지 오지 않는 새벽에도 그래서 나는 종종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한 숟갈을 떠올린다. 딱 한 숟갈로 차가운 위장을 달래주고 나면 왠지 잠도 솔솔 올 것 같다. 그랬던 적도, 그러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들쭉날쭉인 효과와는 별개로 언제나, 지나치게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면 예외 없다. 흰쌀밥 한 숟갈을 크게 떠서 입을 한가득 채워 오물거리는 상상을 한다. 내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는 또 다른 면들을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겠다. 나는 죽을 때까지 세상의 따뜻하고 다정한 모든 것들에 익숙해질 수 없을 테지만, 굳이 사서 외로워할 테지만, 또 죽을 때까지 외로울 때마다 흰쌀밥 한 숟갈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