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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Nov 15. 2018

둥근 이별

돌고 돌아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별을 던지겠지







1. 옥주 씨의 출산예정일은 8월 중순이었다. 하지만 예정일이 지나도 불룩한 배는 감감무소식이어서, 그는 거의 서서 치다시피 하는 볼링으로 아기를 채근했다. 감정 이입해보건대, 아기는 아마 죽느냐 사느냐, 그 기로에 서있는 심경으로 정든 집을 떠날 채비를 했을 것이다. 보름 정도 늦게 태어난 아기는 들릴 듯 말 듯한 크기로 첫울음을 뗐고, 그날은 9월 6일, 나의 생일이 되었다.


2. 나의 엄마가 된 옥주 씨에게 이 얘기를 하면서 '그때도 난 헤어지는 걸 엄청 두려워했던 것 같다'고 덧붙이니 실없는 생각을 다 한다며 웃었다. 그렇지만 정말 평소에 자주 하는 생각 중 하나다. 태어나기 전부터 내 성격, 취향, 기질, 그 모든 것들이 정해져 있었을 거라는 것. 나를 이루는 세포들에게도 그 모든 것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아마 나와 별 다를 바 없을 거라는 것.


1-1. 태어난 이후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처음으로 두려워한 이별은 엄마의 죽음이었다. 매일 밤마다 잠 못 들고 뒤척이다 보면 언젠가는 다가오고 말 그 죽음이 미치도록 아팠다. 그러다 서러움에 못 이겨 훌쩍이면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혼을 냈다. 자다 말고 뭐하는 거냐고.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엄마도 어이가 없었을 거다. 여덟 아홉 살이었던 나는 '이제 자자'며 안아주는 엄마의 품에서 5분도 안돼 곯아떨어지곤 했다. 하지만 길고 긴 밤이 지나도, 학교에 가려고 나선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기가 일쑤였다.


1-2.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들은 대부분 가시거리 뒤로 물러나서 흐릿해졌지만, 한 가지는 또렷이 기억난다. 곰돌이 푸 책가방 앞주머니에 나는 늘 엄마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을 들고 다녔다. 높은 나무기둥 사이에서 엄마와 내가 팔을 벌리고 앞뒤로 서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쉬는 시간마다 그 사진을 꺼내 화장실로 달려갔었다. 울려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학교에 있는 것보다 엄마랑 이렇게 둘이 웃고 있는 게 좋은데, 그러지 못하는 게 슬펐던 것 같다. 인생 끝장난 드라마 주인공이라도 된 듯이 펑펑 울었다. 쉬는 시간 끝나는 종이 다시 울릴 때까지.


3. 다행히도 2학년이 되고서도 똑같은 울음을 반복했던 기억은 없다. 그렇게 울면서 쉬는 시간을 보내다 결국 잘 적응했던 거겠지. 하지만 내게 크고 작은 변화는 언제나 어려웠어서, 심지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도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참 많이 울었다. 그 기간이 한 달 정도 됐으려나. 붉어진 눈가가 담임 선생님께 들통나면서 여러 번의 상담을 거친 후에야 아주 천천히 눈물이 잦아들었다.


4. 다 쓰기도 힘든, 이런 일들이 많았다. 변화와 이별, 나는 이 둘 앞에서 아직까지도 연약하다. 상처 위에 굳은살 대신 연약한 새살이 돋은 것만 같은, 세상이 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저리도록 싫은,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예전에 다니던 학원 한 곳을 그만둔 직후,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다. 그동안 감사했다고, 언젠가 뵐 수 있다면 꼭 그러자고. 그 애에겐 내가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세상은 변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저리도록 싫지만, 결국 나 역시도 한통속이다. 이리저리 흘러가며 타의로, 자의로, 변하며 이별하고 있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왜 이별의 매 순간이 나는 슬프고 아릴까.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그냥 그렇게 타고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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