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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Sep 18. 2022

흰쌀밥 한 숟갈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에게까지 안부인사와 축하를 건네받은 생일날 저녁에, 모두가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12월 마지막 날 11시 50분에, 간만에 시끌벅적한 술자리에 나가 이렇게 재밌게 노는 법도 있었지, 흐뭇하게 돌아가는 길 한복판에서 공동현관으로 향하는 마지막 몇십 걸음도 채 남지 않은 때, 대낮에 엄마가 차려준 밥으로 배를 잔뜩 채우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온 지 두 시간쯤 지나서 해가 기울 때, 나는 그런 때 꼭 따끈한 흰쌀밥 한 숟갈을 입에 떠넣고만 싶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한 숟갈이 생각날 때면, 밥알갱이 하나하나에서 올라오는 그 모든 김이 내 명치에서 두 눈으로 액화되어 쏟아지려는 것을 억누르곤 한다. 그 흰쌀밥 한 숟갈은 마치 탈이 난 내 윗배와 아랫배를 번갈아 쓰다듬는 엄마의 뭉툭한 손가락 마디마디처럼 다정해서, 하루 종일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로 내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모든 낯선 것들을 쑥 내려가게 해 줄 것만 같다. 애초에 나는 그렇게 타고났으니. 문틈에 손톱을 찧어도 사람들 앞에서 한 번쯤 징징대는 법을 몰랐으니. 오히려 검붉어진 손톱에 대고 누군가 "아이구, 아파서 어떡해." 한 마디 얹기라도 하면 온 마음이 두드러기라도 난 듯 간지러웠으니. 온종일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온도에 둘러싸여 있다가 떨어져 나오면 나는 그렇게 불현듯 나를 툭 치는 밤의 냉기에 반응하는 것이다. 원래 밤을 사랑해왔다 고백해도, 냉기가 차라리 익숙해도,  왜 나를 잠시 떠났냐고 쏘아대는 밤의 행패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잠이 도무지 오지 않는 새벽에도 그래서 나는 종종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  숟갈을 떠올린다.   숟갈로 차가운 위장을 달래주고 나면 왠지 잠도 솔솔   같다. 그랬던 적도, 그러지 않았던 적도 있지만, 들쭉날쭉인 효과와는 별개로 언제나, 지나치게 잠이 오지 않는 새벽이면 예외 없다. 흰쌀밥  숟갈을 크게 떠서 입을 한가득 채워 오물거리는 상상을 한다. 내가 얼마나 모순덩어리인지는  다른 면들을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충분히   있겠다. 나는 죽을 때까지 세상의 따뜻하고 다정한 모든 것들에 익숙해질  없을 테지만, 굳이 사서 외로워할 테지만,  죽을 때까지 외로울 때마다 흰쌀밥  숟갈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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