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아니지만
프로 혼밥러로서, 평일에 두세 번은 꼭 혼자 점심을 먹으러 간다. 편안하게 혼밥을 즐기는 팁이 있다면 점심시간을 살짝 비껴나가는 것이다. 사실 원래 다른 사람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 걸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다. 어쨌든 오후 두 시를 조금 지난 시각에는 대개 손님이 거의 없어서 나 혼자 넓은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테이블 회전을 위해 자리를 빨리 비워야 하지는 않을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혼자 앉아서 밥을 먹는 동안, 밥집 사장님은 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님과 편하게 대화를 나눈다. 마치 내가 그곳에 없는 듯이. 존재가 지워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그저 배경의 일부로 스며드는 것 같아 기분 나쁘지 않다.
한날 사장님은 그런 푸념을 하셨다. 교회에서 알고 지내는 한 권사님께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한테 인사를 건넸는데, 그분이 화를 내더라면서. 요즘 세상에 누가 어떤 사람일 줄 알고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하냐고. 요즘 사람들은 다 그런다고, 요즘 세상은 그런 세상이라며. 자연스레 귓가로 흘러들어오는 대화를 들으며 생각해보니 그래, 우리는 보통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과는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존재를 지운다. 너무 위험한 세상이니까.
이튿날 오전에 헬스를 끝내고 8층에서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4층에 잠깐 멈추었고, 네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와 어머님이 함께 탔다. 아이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는 모든 안내판과 공고문들이 신기한 듯했다. 사방을 둘러보던 아이의 시선은 곧 엘리베이터에 함께 타고 있던 낯선 사람, 나에게 쏠렸다. 아이들이 늘 그렇듯 그 친구는 본인이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혼잣말인 척 에둘러 표현하기 시작했다.
"여기 같이 있는 사람은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대상이 나였을 질문을 허공에 잠시 맡겨두며 아이는 곁눈질로 나를 계속 바라봤다. 엘리베이터는 금세 지하 1층에 도착해서 나는 곧 내리려는 시늉을 했다. 이미 혼잣말과 곁눈질로 나에 대한 내적 친밀감을 어느 정도 형성해버린 아이는 친구에게 하듯 손인사를 하며 나를 배웅했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전날 들었던 밥집 사장님의 푸념을 떠올리며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혹시나 마스크 때문에 보이지 않을까 일부러 눈웃음을 한껏 지었다. 그리고 답했다. "너도 잘 가!" 그 순간 아이의 무해한 인사를 받아줄 줄 아는 내 모습에 알량한 자기만족을 느꼈다기보다 요즘 세상엔 정말 가끔가다 스칠 수 있는, 순도 높은 인류애를 느꼈다. 세상이 늘 이렇게 돌아갔으면 했다.
그러나 사실 난 낙관주의자이기는커녕 비관주의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 이유를 좀 더 파고들어 보자면 내가 현실주의자보다는 이상주의자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해한다. 요즘 세상이 왜 그런 세상인지를. 집단의 도덕성은 개인의 도덕성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는 니부어의 사회윤리까지 가지 않더라도(사실 잘 모른다), 이 요즘 세상의 문제는 결국 구성원들 간 신뢰의 문제다. 다들 알고 있듯 신뢰는 쌓는 데 아주 긴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쉽게 쌓일 수 없는 그 신뢰가 집단 안에 단단하게 뿌리내리기는 얼마나 힘든 일일까? 가능하긴 할까? 친절한 사람 백 명을 만나고도 그렇지 못한 한 명을 만나는 순간 수많은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는 깨지고 만다. 지나간 백 명의 저의는 무엇이었나 다시금 의심하게까지 한다. 고개를 가로젓게 되면서도 동시에 찝찝하다. 사실 이 세상은 '바른생활' 시간에 배웠음직한 '상대방이 인사하면 나도 밝게 인사해요.'조차 쉽게 실천할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언젠가 그 아이가 깨우치는 순간이 올까 봐.
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지워야만 할까. 서로가 속해 있는 무해한 배경의 일부가 되어줄 수는 없나. 글의 제목을 한참 고민하다 '믿음'을 검색했더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로 시작하는 성경 구절이 눈을 끌었다. 기독교적인 해석은 아는 바가 없으니 다 배제하고, 내겐 이 문장이 'R=VD'를 함축한 구절로 읽혔다. 우리의 신뢰가 때때로 상처입어도, 바라던 세상을 향하는 믿음을 놓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정작 사람 많은 시공간은 습관처럼 피해다니면서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하는 한 열정적인 중재자*의 뜬구름이려나.
*MBTI 성격 유형 중 내가 속한 INFP의 별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