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만나 가로막혔을 때
1. 초등학교 시절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던 '방과 후 학교' 활동은 어느덧 서른에 접어든 내게 아득해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또렷한 기억이 몇몇 있다. 내 나이가 지금 나이의 불과 3분의 1이던 시절, 나는 방과 후 학교 수업으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준비했다. 3급을 목표로 ROM과 RAM의 차이, CPU의 뜻 같은 것들을 열심히 암기하던 기억이 난다. 필기시험을 치르는 장면은 내 머리에서 지워져 버렸으나 강렬히 뇌리에 박혀버린 장면이 있었으니, 바로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 필기시험 결과를 확인한 오후였다.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필기 합격 점수가 70점 이상이었다. 파도처럼 온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기대와 초조함을 머금고 확인한 내 점수는?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69점이었다! 맨 앞줄에 앉아있던 나는 선생님께 호소했다.
"69점이나 70점이나 그게 그건데 그냥 합격시켜주면 안 되는 거예요?"
"69점이면 거의 70점이나 마찬가지잖아요!"
"1점 차이로 떨어지다니 말도 안 돼요!"
말이 될 리 만무한 억지였으므로 선생님께서도 내 말에 긍정하는 대답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열 살짜리의 진심 어린 하소연이 길어질수록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것만 같은 선생님의 눈빛에 어느 정도 위로를 받고 진정이 됐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69가 정말 70이 될 수는 없는지, 그 물음표가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2. 중학교 2학년 1학기 수학에 등장하는 개념 중 내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왔던 부분은 '순환소수'였다. 그중에서도 순환소수를 분수로 바꾸는 원리가 가장 신기했다. 끝도 없이 늘어지는 순환마디를 뺄셈 하나로 간단하게 없애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 개념은 더 크나큰 충격으로 나를 인도했는데, 뺄셈을 이용한 이 원리에 따르면 0.99999… 는 분수로 바꾸었을 때 9분의 9가 되어 1과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0.99999… 와 1은 분명히 다르게 생긴 숫자인데, 왜 소수를 분수로 바꾸기만 하면 1이 된다는 거야? 설마 수학에도 허점이 있는 거야? 아니야, 3분의 1은 소수로 바꾸면 0.33333… 이고, 여기에 3을 곱하면 1 되니까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해. 뭐지? 헷갈려!
3. 몇 년이 더 흘러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극한값을 배웠다. 그제야 다시 0.99999… 와 1이 떠오르면서 납득이 되는 듯했다. 이후로는 수학을 전공하지 않아 더 깊게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상의 수학적 지식은 없다. 다만 어쭙잖게나마 '인간의 성숙'과 나의 69점, 그리고 극한값을 연결시키고 싶다.
인간이 품은 미성숙함에 관한 콤플렉스는 그것의 극복을 지렛대 삼아 인간의 성숙을 지지, 지향한다.
몇 년 전 이런 괴상한 문장을 썼다. 마치 영어로 된 문장을 번역해놓은 듯한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시 생각해보건대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꽤 간단했구나 싶다. 성숙이란,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동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절대 올라설 수 없는 완전함, 그 정점에 다가가려는 과정이 성숙일 뿐, 미성숙과 성숙의 관계는 반대가 아니다. 미성숙의 극한값이 바로 성숙이다.
인생의 어느 한 장면에 멈추어서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환상 속의 그대'였구나. 그래서 그 열 살짜리가 그렇게나 억울했구나. 심지어 69점을 확인한 그날 이후의 일들은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져 버렸다. 너무 실망해서, 다시 시험을 봐야 한다는 게 속상해서, 나도 모르게 잊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잊은 걸까?
하지만 본가에 그대로 있는 내 옛날 책상 서랍 속엔 워드프로세서 3급 자격증이 고이 모셔져 있다. 어떻게 땄는지도 모조리 잊을 만큼 69점, 그 억울한 점수에 압도됐었지만, 장면 속의 나는 몰랐을 수밖에. 나의 가능성은 69를 지나 70에 도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유한을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0.99999… 와 1이 다를 수밖에 없지만, 무한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면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좋아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