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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Feb 15. 2019

껍질부터 먹는 인생

매달린 절벽에서 손 떼기







나는 작별을 고하려고 한다. 어렸던 나에게, 엄마가 치킨 살과 껍질을 발라주면 치킨 살부터 허겁지겁 먹었던 나에게, 사실은 껍질을 더 좋아했던 나에게, 그래서 결국 살로 배를 채우고 정작 껍질은 억지로 욱여넣고 말았던 나에게, 안녕. 이제 나는 내가 좋아하는 껍질부터 먹을 거야.


나는 강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인상깊은 책 구절을 따로 써두는 일도 없었다. 스스로 묻고 가르쳤다. 늦어도 상관없었고, 내가 가닿는 곳이 이미 다른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뒤덮여있다 해도 괜찮았다. 그 발자국들은 어쨌건 내 발자국이 아니니까, 나는 내 힘으로 도착했으니까. 그래서 이제야 이렇게 인사를 건내는 것이다. 나는 껍질부터 먹을 거라고. 미련없는 오늘을 살 거라고.


뭐 그렇게 시덥잖은 말들로 돌림 노래를 하나 했다. 퀴퀴한 먼지, 오래된 서랍 냄새가 나는 말들이 왜 자꾸 이 사람 저 사람 입 위에 오르내리나 했다. 이제 나는 내 목소리로 말한다. 오늘을 살겠다. 미련없는 지금을 살겠다. 행복한 이 순간에 살겠다. 카르페 디엠? 메멘토 모리? 그건 남들이 했던 말이다. 무문관을 뚫지 못하는 암호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던 말도 닳고 닳았다. 부처는 이제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된다. 목적지는 알았지만 가는 법은 몰랐고, 히치하이킹도 소용없었다. 가슴 검은 도요새는 나더러 혼자 가라 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순종한 건 아니었다. 그냥 혼자 왔을 뿐. 혼자 와서 나 혼자 되뇌이겠다. 행복한 오늘을 살자. 더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미련이 남아 죽음을 두려워했던 거야. 미련없는 오늘에 있자. 별것없이, 사랑하는 내 햄스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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