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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애진 May 21. 2018

오늘의 할 일 - 침흘리며 푹 잘 것

삶을 편집하지 않는 연습








요즘은 입을 벌리고 자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잘 지내다 갑자기 한번씩 턱관절 통증과 두통에 시달리곤 하는데, 내가 자면서 이를 심하게 가는 습관이 그 이유일 것 같아서다.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시도하기 시작한 이 '연습'은 다행히 효과를 보이고 있다. 두통이 확연히 줄었고, 턱관절에서부터 관자놀이까지 이어지며 묵직하게 느껴지던 불편함도 많이 나아졌다. 덕분에 정신이 전보다 더 가뿐해진 느낌이 든다. 방법이 어렵진 않다. 잠들기 직전까지 될 수 있는 한 편하게, 침흘릴 준비를 하는 것. 그게 전부다.


지금까지 내게, 자면서 침을 흘린다는 건 늘 언짢은 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면서도 침은 흘리고 싶지 않은. 베개와 이불이 내가 흘린 침에 젖어 축축해질 거라는 이유에서라기보다는, 자면서 침을 흘리는 모습은 좀 웃기니까.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잖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혼자 산지가 꽤 됐다. 그러니까, 그 민망함과 부끄러움에 대한 내 기우는 더더욱 민망하고 부끄럽게도 '과한 자의식'에서 비롯한 신기루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 삶은 언제나 두번 되풀이됐다. 한 번은 내 눈 앞에서, 실시간으로. 또 한 번은 내 머릿에서, 파노라마로. 파노라마의 촬영기법은 영 다채롭지 못해서 화면을 응시하는 시점은 늘 남들의 시선 위주였다. 나레이션도 남들이 했다. 정작 단 한 번도 빌려볼 수 없는 그들의 시선과, 정작 그들은 모르는 가상의 나레이션. 나는 감독이 누군지도 모른 채 내 인생의 관객이 되어 상영관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방법이 어렵진 않은데, 별것 아닌 일과인데, 입을 벌리고 자는 연습은 그래서 내게 꽤 의미가 있다. 한껏 침을 흘려보는 것과 내 인생의 주체를 나에게로 다시 가져오는 것이 내겐 이렇게나 깊게 연결되어 있다. 내가 자면서 침을 한 바가지 쏟든, 어떤 옷차림으로 밖에 나가든, 무엇을 하든, 내 삶은 되도록이면 한 번에 흘러가버리고 말면 좋겠다. 그냥 내 눈 앞에서, 가볍게, 사서 아프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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